생각하는 발

발로 뛰어 머리에 이르는 생각

by 미쓰한

밖순이(집순이의 반대말)는 발이 고생이다.


나는 소문난 밖순이라서 어릴 때부터 국토대장정을 시작으로 요즘은 마라톤까지, 열심히 걷고 뛰는 걸 즐기며 살았다.


내가 자전거로 국토대장정을 계획한 것은 페달을 밟는 발에 아직 굳은살도 없던 스무 살 때였다.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그곳에서부터 울진까지 9박 10일간 가열차게 페달을 밟았다. 태풍을 만나 원래 목적지였던 강릉을 한참 못 미치는 울진에서 끝나버린 여행이었지만 후회 없는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대학생 때는 산을 좋아해서 산악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름하야 ‘알다리 산악회’. 나는 서울에 산봉우리가 생각보다 아주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도봉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이 아름다웠고, 돌산인 불암산에서 밧줄을 잡고 등반할 때는 대단한 모험가가 된 기분도 들었다. 서울에서 제일 높은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갈 때는 늘 큰 결심이 필요했고, 나지막한 인왕산은 거저 올라가는 기분으로 올랐다.


최근 3~4년간 내 발이 가장 고생한 이유는 아마도 마라톤일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마라톤이 전부 취소돼서 출전하지 못했지만 (코로나가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곳이 도대체 어디인가?) 작년까지만 해도 10킬로 세 번과 하프마라톤 한번, 총 네 번의 마라톤을 3년간 매년 참가해왔다. 아직 풀 마라톤에 참가할 용기가 나지 않지만 언젠가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나는 내 두 발을 혹사시키며 무엇을 얻었나?


우선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고운선이었다고 기억되던 내 다리는 알 다리가 되었다. 또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클리셰를 두 다리로 느꼈으며,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꺼내보는 고전스토리를 남겼다. (알 다리 빼고는) 고생한 것에 비해 너무나 값진 것들이었다.


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게 루프탑에 올라가거나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도 편한 방법을 선호할 때도 많지만, 땀 흘려 올라온 자들만이 느끼는 정상에서의 성취감은 경험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나의 인생은 녹록지 않아서 피땀 흘리는 과정이 반드시 정상에 도달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힘든 과정이 배반 없이 최정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경험은 매번 내게 위안을 주었다. 그것은 노력을 멈추는 것, 포기하는 것을 경계하게 하는 경험이었다.


마라톤은 나에게서 척추측만증과 생리통을 사라지게 해 주었다.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하는 멋진 사람이야’. 계획된 마라톤 준비를 위해 아침에 달려 나가는 내 모습에 자존감도 올라갔다. 운동으로 시작한 하루는 어떤 성과 없이도 만족스러운 하루가 되기도 한다.

마라톤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은데, 나는 주로 ‘아 이제 그만 뛰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허세를 부릴 만큼 기록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이를 악물고 달려봤자 21킬로를 두 시간 반에 완주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 가끔 달리기를 할 때 글감이 마구 떠오르기도 한다. (마라톤을 열심히 하는 분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생각할 에너지를 남기고 달리냐는 따끔한 말씀을 들었지만.) 달려서 얻어낸 글감은 주로 발랄하고 유쾌한 글쓰기로 이어졌다.

마라톤이 나에게 남긴것들

나는 앞으로도 내 두 발을 열심히 굴려서 많은 것들을 얻어내리라 다짐한다. 밖순이는 발에게 고맙다. 발로 뛰어서 머리로 전달되는 생각의 힘을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아마추어가 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