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쏟은 콜라의 끈적임과 친해지는 일

by 파인애플



예상치 못한 작은 사고 앞에서 짜증과 설움이 한 번에 북받친 적이 있었다. 불과 4개월 전의 일이다. 국가공인 상담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한 3일간의 연수 현장으로 가기 위해, 나는 지방에 있는 연수원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랴부랴 테이크아웃해 온 콜라와 쫀드기 간식과 함께. 그리고 사고는 버스 뒷좌석에 앉자마자 바로 터졌다. 연수원 숙박을 위해 한가득 싸 온 짐을 짐칸에 억지로 넣는데 급급해, 좌석에 콜라를 놔뒀던 걸 깜박했던 것이다. 콜라는 마치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나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좌석 아래로 고꾸라져 콸콸콸 버스 뒷좌석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고, 나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연수원에서 이틀이나 숙박해야 하는 것도 충분히 짜증 난 상태였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까지 벌어지자 울컥해 망부석같이 자리 앞에 서있었다. 그러다 문득,


콜라컵을 버려야 해.


라는 일념 하나가 머릿속을 지배해 콸콸 흐르던 콜라컵을 그대로 집어 버스 출입문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바닥을 적시고 텅 비어버린 콜라컵은 쓰레기통에 굳이 버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가벼웠고, 나는 버스 출발 시간과 동시에 내 자리에 착석한 뒤 버스의 운전방향에 따라 계속 바닥 위를 흘러 다니는 검고 끈적한 액체를 찝찝한 마음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심지어, 바쁘게 운행되는 버스 안에서 콜라가 버스 뒷좌석 바닥을 죄다 적시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사고를 저지른 나밖에 없었기에 찝찝함은 운행 내내 이어졌다. 결국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 미화원 분께 내가 벌려놓은 일을 이실직고하고 90도로 사죄인사를 하고 나서야, 콜라 사고로 인한 울화는 나의 마음속에서 사그라들었다.


사실 그때 끈적한 콜라가 버스 안을 오염시킨 일은 단순한 사고였을 뿐인데, 내가 느낀 감정은 절망에 가까웠던 게. 마치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져버린 듯 느끼고 행동했던 게. 전부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나와 내 앞의 상황에 대해 어떤 기준이 있었기에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준이라는 건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순탄해야만 한다.' 혹은, '내 상황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야만 한다.' 같은, 세상에 존재하기 힘든 '온전함'이라는 기준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금 새로 입사한 직장에서 2주 만에 나에게 떠넘긴 벽돌책에 가까운 업무지침서를 들고, 그 위에 한강 작가의 작은 소설집을 얹은 뒤, 체념한 얼굴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주 웃기게도 그런 내 발 밑에는 누군가가 흘려놓은 콜라 웅덩이가 존재를 과시하고 있고, 나는 그 콜라 웅덩이 위에 냅킨을 한가득 깔고 그 웅덩이를 그저 건너, 최대한 덜 끈적이는 위치에 앉아 슬슬 한강 작가의 소설집을 다시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바닥 아래의 끈적이는 콜라가 차라리 정겹다. 이미 저질러진 실수, 이미 알고 있는 나쁜 상황. 그런 것들은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게까지 하지는 못한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감당하기 벅찬 일들에 하나씩 대처하는 데만도 빠듯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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