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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애플 Oct 18. 2024

이상한 그 아이를 이해하는 습관

두 번째 이야기


내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정확하진 않지만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나서기를 좋아하던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친구들에게 잘난척하는 아이로 낙인찍혀 많은 친구를 사귈 수가 없었고, 그런 나에게 정말 평범하고 얌전한 인상의 한 친구가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 손이 구원의 손길이 아닌 이상한 사람들의 늪에 빠지는 나락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잡지 않았을 텐데, 아홉 살짜리 꼬맹이에게는 그 아이의 이상함보다 혼자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외로움은 가셨지만, 아홉 살짜리 꼬마가 겪기에는 참 안타까울 정도로 이상한 일이 그 아이로 인해 생기고야 말았는데,


싸움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아이가 나와의 싸움 끝에 내 책상 위에 '절교장'을 얹어놔 버린 것이다.

태생적으로 잘난척하는 성격으로 인해 제대로 친구를 사귄 역사가 없던 꼬맹이였던 나는, 친구로 부를 수 있는 첫 대상이 나에게 그와 같은 관계의 종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외톨이가 되는 것보단 자존심을 버리고 그 절교장을 없던 것으로 되돌려 놓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나는 결국 그 아이에게 교실 안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다. 이렇게 줄줄이 그때의 기억을 쓰면서도 여전히 싸움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그 이상한 아이의 의기양양한 표정만큼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결국 나의 첫 친구이자 9살에 절교장을 쓸 생각을 할 수 있던 그 이상한 아이와는 다음학년으로 진급하자마자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생각해 보면 절교장이니 뭐니 할 것 없이 같은 반에 있어도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면서 멀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도 그 이상한 아이 또한 나만큼이나 친구라는 관계를 잘 유지하지 못하는 꼬맹이가 아니었나 싶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날까지 하하 호호 잘 지내다가 절교하자고 도장 꽝 박아버리다니 발칙한 기집애. 그 기집애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친구 사이를 밸런스 있게 유지하는 것이 참 어려워져 버렸으니, 친구 없는 외톨이인 내 절망을 바랐던 그 애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쁜 뇬.


근데 이렇게 쭉 예전의 기억을 나열해놓고 보니, 절교장 받았다고 바로 사과한 내가 제일 이상한 사람인 것도 같다. 역시 이 시리즈는 이상한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만난 이상한 사람들을 풀어놓는 일종의 자기 이해를 돕는 썰풀이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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