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선 Sep 24. 2024

05화 : 숙명 (1/3)

“몇 시에 왔는가?”


벌컥 문을 열며 들어온 요노는 물었다.


“아 깜짝이야.”


“내가 내 사무실 들어오는데 노크라도 해야 하는가? 놀라긴 왜 놀라. 참.”


“그건 아니지만…. 저 아까 7시 좀 안 돼서 왔어요.”


“잠도 없어. 참 젊어.”


셰프 요노는 서류 가방을 책상 옆에 두고 컴퓨터 전원을 켜면서 조심히 그의 의자에 앉았다.


요노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자네 요리가 하고 싶은가?”


“네?”


“자네 매일 같이 아침마다 내 방에서 쿡 북 읽는 거 알고 있네.”


“모르겠어요. 제가 태어나서 꿈이나 목표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참 난해해요.”


그도 알고 싶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끊을 수 없는 중독적인 열정과 피곤해도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떠 출근하게 하는 그 희로애락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말이다. 그저 책들이 재미있어서라고 하기엔 분명히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로하스가 해고되던 그날. 자네가 가드망제 스테이션에서 처음 일 했던 그날 말일세. 자네 그때 기분이 어땠는가?”


“심장이 떨렸어요. 저는 요리를 하지 않았어요. 이미 제이가 저녁 서비스 전에 준비해 둔 재료들을 알려준 대로 그저 접시 위에 올렸을 뿐인데 그 모든 과정이 떨렸어요.”


“그게 다인가? 아니지. 양에 차지 않아. 무엇이 자네를 매일 아침 내 사무실로 오게 한 건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네.”


존은 펼쳐놓은 책을 천천히 덮으며 말했다.


“소금…. 소금이었어요. 소금 맞아요!”


“소금?”


“네. 소금이요. 분명히 저는 요리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관자 위에 제이가 보여준 것처럼 룰로즙을 뿌리고 검은색 소금을 올리기만 했는데 다른 재료들로 마무리하기도 전에 이미 그 관자는 하나의 요리가 되어 있었어요.”


요노는 그의 오른쪽 눈썹을 치켜들더니 살짝의 미소를 지었다.


“자네, 방학이 언제 끝나는가?”


“이번달 마지막 주에요.”


“3주라….”


요노는 책상 위 달력을 넘기면서 한숨을 쉬더니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해보자. 그래. 자네 인생이네.”


“네?”


“3주 동안 설거지 말고 자네가 읽었던 책을 쓴 사람들의 발자국을 천천히 따라 걸어보게.”


요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이를 프린터기에서 꺼내더니 그 위에 연필로 천천히 그려나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레스토랑. 아니 주방에 대해서 대충 설명해 주겠네. 사실 난 그 누구에게도 이런 적은 없지만 자네에겐 필요할 것 같아 하는 걸세. 나머진 자네가 부딪혀 가며 배우게.”


존은 자꾸만 그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이 상황들이 당황스러웠지만 싫지 않았다. 색다른 놀라움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을 우연이 준 기회로 바라보며 굳이 마다해야 할 이유야 말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계획도 꿈도 없이 간 대학에서 방황하던 존에게 주방은 좁지만 희망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자네와 멜빈처럼 설거지하는 포터팀이 있지. 나는 대부분 그들을 오전 오후 팀으로 둘이나 셋으로 팀을 짜 일을 하게 하네. 자네가 오전팀이었으니 오전팀 업무는 알 것이고. 오후 설거지팀은 요리사들이 집에 간 후 주방 전체를 모든 곳을 다시 닦고 소독하고 사실은 더 힘든 대청소를 매일 밤 한다네. 저녁 서비스가 끝나면 요리사들은 집에 가기 전 주방을 깨끗하게 청소하지만 세제로는 잘 안 지워지는 기름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손길이 한번 더 필요한 걸세.”


“아. 그래서 매일 아침 주방이 저렇게 깨끗할 수 있는 거구나.”


“자네가 매일 출근하면 제일 먼저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정육사 케빈 말인가요?”


“맞네. 그 처럼 요리를 하기 전에 모든 재료들을 준비해 두는 사람들을 프랩쿡이라고 부르지. 프랩팀에는 정육, 생선 및 해산물을 손질, 야채 손질, 발효 등등 요리의 과정을 거치기 전 재료를 손질해 주는 요리사들이 있네. 그들은 점심과 저녁 서비스에 필요한 재료들을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자네보다 일찍 출근하는 것일세.”


“그럼 손님에게 나가는 음식을 요리하고 접시에 올리고 하는 요리사들은 뭐예요?”


“그들을 우리는 라인쿡이라고 부른다네. 플레이팅 뿐 만 아니라 실질적인 요리를 하는 사람들인 셈이지. 프랩쿡들이 만들어둔 기본적인 소스 베이스를 활용해 요리에 올릴 최종적인 소스를 만들고, 손님들의 요청에 따른 굽기 정도에 완성도를 맞춰 고기와 생선을 굽고, 또 플레이팅에 필요한 섬세한 미장 플라스의 프랩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라인쿡들의 일이지."


요노는 커피를 한잔 마시며 목을 가다듬고는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포터팀, 프랩팀, 라인팀 모든 주방 관계자를 관리할 뿐 만 아니라 손님들에게 나가는 요리를 개발해 메뉴에 올리고 라인쿡들이 요리한 요리를 손님에게 내보내기 전에 확인하고 주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제적인 부분과 경영적인 부분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매니저라고 부른다네. 그 매니저 팀에는 높은 순서대로 총괄셰프, 셰프데 퀴진, 그리고 수셰프 팀이 있지.”


“음…. 그렇다면 라인쿡이 프랩쿡 보다 더 경험이 많은 요리사인가요?”


“꼭 그렇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대부분이 그렇긴 하네. 하지만 정육이나 생선을 손질하는 사람들을 그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감히 누가 더 잘났고 못났다고 말할 수 없는 걸세. 하지만 라인쿡들 중에 모든 것을 다 할 줄 아는 요리사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준비된 요리사들에게 기회가 오면 수셰프가 되는 것일세.”


“수셰프….”


“자. 대충 이해했겠지? 이제부턴 자네가 스스로 배워 나가는 게 맞네.”


“네. 솊.”


“오늘부터 자네 스케줄은 매일 아침 8시부터 주방에서 시작될 것일세. 설거지와 청소는 걱정 말게. 내 서랍 제일 밑에 열어보면 내가 안 쓰는 칼들이 있는데 자네 손에 제일 잘 맞는 것 하나와 제일 작은 칼 하나 골라보게. 그런다고 자네한테 내 칼을 주겠다고 한 적은 없네. 조심히 항상 조심히 사용하게. 칼은 자네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하네. 조금 있다 프랩팀 수셰프가 오면 자네에게 할 일을 줄 걸세.”


“네. 솊.”


요노는 대화를 마치자마자 방어를 주문하던 수산물 업체와 통화를 하러 나갔고 그 사이 존은 요노 책상 가장 밑칸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칼날, 칼의 두께, 크기, 무게 그리고 디자인의 섬세함까지 모두 다 달랐다. 셰프가 알려준 대로 그의 칼들을 하나씩 잡아보았다. 왜 잡아보라고 하셨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는 그 칼이 저 칼 같고 저 칼이 그 칼 같았다. 스무 개쯤 되는 칼을 하나씩 잡아 보았을 때였나. 매우 투박한 다자인의 칼 손잡이를 한 칼이었다. 무턱대고 잡았던 그 칼의 손잡이부터 날의 끝까지 느껴지는 균형감은 마치 자신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와 손바닥이 칼에 맞춰 태어난 게 아닐까 라는 착각이 순간 들 정도로 완벽했다. 얇았고 가벼웠다. 손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가벼움 보단 묵직한 줏대가 있는 가벼움이었다. 어떤 칼이 좋은 칼인지 그저 알 리가 없었지만 그 칼을 잡고 있을 때만큼은 자연스러웠다.


'고노스케 HD2'


"이거다. 내 칼."



“준비 됐나?”


“네. 솊.”


수셰프 도미닉은 존에게 앞치마를 건네며 말했다.


“어려운 일은 없을거야. 3주동안 모든 스테이션에서 견습한다고 생각하렴. 그나저나 너 진짜 운 좋다. 셰프님이 이런 기회까지 주시고 말이야”


“열심히하겠습니다!”

이전 04화 04화 : 운명이 부른 우연 (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