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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선 Sep 28. 2024

07화 :  숙명 (3/3)

그가 일상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는 직업 박람회가 열렸다. 다음 해 여름학기 인턴쉽을 대비해야 하는 1학년 학생들에게는 특히나 중요한 연중행사였다. 존도 룸메이트 데이비드와 여느 학생들처럼 화이트 칼라에 어울리는 바지와 신발을 골라 사 입고 박람회에 참여했다. 뉴욕에서 알아주는 공대인 만큼 웬만한 대기업부터 떠오르고 있는 스타트업 회사들까지 학교 강당을 꽉 채웠다. 모두가 자신의 이력서를 뽐내기 바빴고 회사를 홍보하러 나온 직원들과 한 번이라도 더 이야기하기 위해 모두가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야, 너 뭐 해?”


데이비드가 멍 때리고 있는 존의 팔을 툭치며 물었다.


“몰라. 생각 없어.”


“아니 그래도 너 어제 하루종일 이력서 만들었잖아. 애써 만든 거 돌리기라도 해 봐.”


“준다고 뽑아주냐. 너 다 했음 가자.”


직업박람회에서 기숙사로 돌아온 데이비드와 존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버펄로윙에 맥주?”


“좋지.”


짜고 시고 매운 버펄로 소스의 자극 끝에 목구멍 짜릿해지는 시원한 맥주의 얄짤없는 탄산은 정신없었던 하루 끝에 완벽한 보상이었다. 한 캔에서 시작했던 맥주는 두 캔이 되고 세 캔이 되다 결국 데이비드와 존에게 진실의 방으로 들어갈 용기라는 열쇠를 주었다. 데이비드는 존을 슬쩍 보더니 자신의 안경을 입고 있던 옷으로 닦으며 물었다.


“너 어떻게 들어온 학교인데 그만두기라도 하려고?”


존은 대답 대신 반쯤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닭봉을 잡고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니까 쉽게 말하면 내 인생엔 이런 짜고 맵고 셔서 입안에 침까지 고이는 극한의 자극이 필요한 거 같아.”


데이비드는 말없이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빈 맥주캔만 만져댔다. 그런 데이비드를 보던 존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해방 말이야. 해방. “


“해방?”


“응.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나에게 맞는 옷을 입어본 적이 이 없었어. 벌거벗은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숨고 피했어.”


“뭐를 피하고 싶었던 건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앞에 이미 놓여있던 현실.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내 존재. 사람들이 돈을 걸고 지켜보는 경주마라도 될 수 있다면 그런 삶이라도 괜찮았어. 눈가리개를 하고 옆을 가리면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으니깐 벌거벗은 내가 숨을 필요가 없었어. 죽을 듯이 숨이 차도록 달리다 보면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피해. 그 현실도, 내 눈앞에서 거슬리던 사람들도, 내 존재도. “


존은 냉장고에서 막 꺼낸 맥주캔을 따 반쯤 눈이 감긴 데이비드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난 앞으로 달리던 게 아니었더라고. 기수 없이 혼자 달렸던 난 그냥 앞으로 가는 줄 착각한 상태로 경마장을 이탈하고도 한참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리던 어리석은 말이었던 거야. “


“어떻게 살 작정인데?”


“나 갖고 싶은 옷이 생겼거든. 나에게 안 맞을지 몰라. 하지만 내가 그 옷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 무모한 도전일까? “


“야 우리가 이 어려운 학교도 들어왔는데 뭔들. 도통 뭔 말인지 이해 안되는데 네가 하고 싶은 그거 해.“


“해방하는거. 눈가리개 벗는거.”


존은 곧 바로 잠에 들었다. 데이비드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 것인지, 그저 술 주정으로만 들어준건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밤 존은 진심이었다.

스무살 청년의 조금은 더 요란하고 아팠던 성장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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