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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선 Oct 04. 2024

09화 : 설레이는 내 일 (2/4)

"트라이얼은 언제가 좋을까?"

(Trial : 1차 구술 면접 이후 2차로 주방에서 보는 실습 면접)


저스틴은 스케줄러를 보며 존에게 물었다.


"당장 내일 하고 싶습니다!"


그는 단번에 조나단의 일하고자 하는 열정과 배움의 목마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사람이었다. 경력은 요리사 업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에서 시급, 연봉, 그리고 포지션까지 그 한 줄 차이로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아주 가끔 그 누구도 건들지 않은 순수함이 존재하는 열정, 자신의 일에 대해 열렬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저스틴은 존의 눈빛과 몇 마디의 말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순수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래된 경력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찬란하고 독창적인 '색'이 생긴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면접을 마친 후 레스토랑에서 나온 존의 두 눈에는 노을이 감싸 안은 뉴욕 시티의 가을밤으로 가득 찼다. 저스틴과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조나단이 저스틴을 처음 만난 그날로부터 10년 전, 스물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의 저스틴은 뉴욕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함께 미슐랭 2 스타를 받은 요리사로서 뉴욕 타임스 메인 기사에 당당히 소개되었다. 당시 많은 대중들에게 주목받았을 뿐만 아니라 업계에서는 그를 '초인'이라 불렀다. 내세울 경력이란 하나 없이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가득 차 텅 빈 조나단의 종이 한 장 조차도 무시하지 않고 그에게 기회를 준 저스틴이었다. 깊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모습, 말투, 그리고 분위기, 저스틴의 색은 농후했다.



-지이이잉

9AM


반지하에서의 삶도 어느덧 적응이 되어가던 참이었다. 햇빛이 들지 않아 집이 자주 습해진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크게 불만은 없었다. 조나단은 빠르게 샤워를 하고 검정 바지와 하얀 반팔티를 찾아 꺼내 입었다. 그리고는 유튜브를 켜 식칼을 가는 영상을 보며 숯돌과 요노에게 받았던 고노스케를 꺼냈다. 일정한 기울기를 유지하고 급하지 않지만 느리지도 않은 어느 적당한 박자를 타며 갈기 시작했다. 주저하는 순간 칼 날이 상하기에 그가 타는 박자와 칼의 손잡이를 잡는 오른손, 그리고 칼날을 지지하는 왼쪽 손가락들의 힘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믿는 것뿐이었다. 맞고 틀리고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던 조나단이었다. 다 갈린 칼은 잘 정리해 칼집 안에 끼워 가방에 넣고 일주일 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트위저와 간단한 조리 도구들도 잊지 않고 챙겼다.


‘르쿠'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한적한 맨해튼이었다. 레스토랑 문 앞에 도착한 존의 심장은 어제와 다르게 불안정할 정도로 떨렸다. 존은 두 눈을 감고 선선히 불어드는 가을바람을 크게 마셨다.


“후…. 할 수 있어. "


숨을 크게 뱉은 존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레스토랑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오늘 가드망제 꼬미 실습 면접 나온 조나단이라고 합니다."


(가드망제 garde manager : 불을 쓰지 않은 차가운 음식을 만드는 스테이션. 주로 애피타이저, 카나페를 다룸.)

(꼬미 commis : 라인쿡 중 각 스테이션마다 가장 낮은 레벨의 요리사.)


레스토랑 다이닝 룸에서 보이는 오픈 키친에는 그 어떤 요리사도 보이지 않았다. 조나단의 목소리에 손님 한 명 없던 널찍한 레스토랑 다이닝 구석에서 한 남자가 존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안드레아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


조나단을 제일 처음 레스토랑 문 앞에서 반겨준 사람은 영국식 영어를 하던 중년의 남자였다. 깔끔하고 진한 갈색 정장에 검정 구두, 잘 정리된 머리 스타일을 한 안드레아는 아주 잠깐 존이 스스로를 손님으로 착각할 정도로 친절했다. 그의 모든 움직임은 우아했고 안정적이었다. 안드레아와의 짧은 대화는 떨려 애써 붙잡았던 존의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 주었다.


“어 왔구나! 따라와. "


존은 저스틴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 보니 그곳에는 1층에서 본 주방 보다 더 넓은 주방이 있었다. 지하층의 80%를 주방으로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넓었다.


“자 이곳은 프랩 키친이야. 프랩쿡들 라인쿡들 모두 여기서 오후 3시까지는 같이 일 하는 공간. 프랩쿡들은 아침에 이곳으로 출근해서 퇴근 때까지 일 하고, 라인쿡들은 알다시피 여기서 미장 플라스를 다 프랩 하고 저녁 서비스는 윗 1층 오픈 키친에서 퇴근 전까지 일하는 시스템이야. "


(프랩쿡 prep cook : 라인쿡을 보좌해 조리 업무를 돕는 요리사. 라인쿡들의 미장 플라스를 준비해 줌 - 각종 농수산물 손질, 대량 채수 및 육수 조리 등)

(라인쿡 line cook : 미국에서 쓰는 요리사 포지션 용어. 주로 수셰프 되기 전의 모든 요리사들을 묶어 칭함. 실질적으로 손님들에게 나가는 음식을 조리하는 요리사들. 단, 프랩쿡 제외)

(서비스 service : 미국식 레스토랑 용어. 요리사들이 손님들의 주문에 맞춰 음식을 최종적으로 조리하고 플레이팅 하는 것부터 서버들이 음식을 손님의 테이블 위에 서빙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일컫는 단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져요….”


존은 벅차오른 나머지 마음에 맴돌던 말을 그도 모르게 뱉었다.


프랩 키친 안의 모든 요리사 팀, 설거지 및 청소를 담당하는 포터 팀, 와인잔이나 대부분의 커틀러리 물 떼를 깨끗하게 닦아주는 폴리셔 팀, 그 어느 누구 하나 엇박을 내지 않았다. 그들 모두 진지하게 소통하고 경청했다. 마치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요리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자 여기는 사무실. 프런트 직원들은 사무실이 2층 창고 옆에 있고 주방 매니저들은 여기 지하 라커룸 옆에 사무실을 써. 그리고 제일 구석에 있는 저 방이 라커룸이야. 우선 오늘 너 짐은 사무실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이제 옷 갈아입고 필요한 거 챙겨서 프랩키친으로 나오렴. "


“네. 솊.”


라커룸에는 사이즈 별로 잘 다려진 하얀 셰프 코트가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앞치마는 각이 잡혀 개어진 채 선반에 정리돼 있었다. 조나단은 가져온 주방화로 신발을 갈아 신고 셰프 코트를 입었다. 거울을 보고 새 하얀 토크를 고쳐 쓴 후 그는 칼과 주방도구들을 챙겨 저스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토크 toque : 요리사들이 쓰는 하얀 모자의 명칭)


“자 지금이…. 12시니까 3시까지 가드망제 팀에서 디너 서비스 할 미장 플라스 프랩 하고 쉬는 시간 30분 가질 거야. 3시 30분 라인업 있고 4시까지는 모든 미장 플라스가 1층 키친에 준비되어있어야 해. "


“네. 솊.”


조나단은 대답과 동시에 손바닥만 한 노트를 꺼내 저스틴이 말한 타임라인을 다 받아 적었다.


12pm - 3pm 프랩
3pm - 3:30 pm 쉬는 시간
3:30 pm 라인업
4pm 가드망제 스테이션 서비스 준비 끝


“잘해보게.”


저스틴은 조나단의 오른쪽 어깨를 살짝 잡으며 말하곤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존이라고 해요. "


“어 반가워. 나는 가드망제 씨디피 알렉스, 이 친구는 가드망제 로렌 그리고 맥스.”

(씨디피 Chef de Partie 의 줄임말 cdp : 각 스테이션의 팀장 요리사들을 칭함)


칼질을 하던 로렌과 맥스가 손을 급하게 닦고선 존에게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서로 간단한 소개가 끝내자마자 알렉스는 하던 일을 멈추고 클립보드를 꺼내 들었다.


“자, 이게 가드망제 스테이션 프랩 리스트야. 가드망제는 프랩이 다른 스테이션에 비해 많은 편이야. 이 리스트는 내가 매일 밤 디너 서비스가 끝나면 다음날 프랩 할 것들을 정리해서 업데이트해 두니깐 그것에 맞춰서 3시 전까지 준비를 끝내면 돼. "


“쉬는 시간 전까지는 리스트에 있는 해야 할 일들을 끝내야 한다는 거죠? "


“그렇지. 쉬는 시간 이후로는 또 할 일들이 있어서 일에 차질이 안 가게 하려면 타임라인 잘 짜서 움직여야 해. 하다 보면 뭔 말인지 알 거야. "


“네! "


”오늘 금요일이라서 할 프랩 양이 생각보다 많으니깐 속도 높여서 대신 일관성 신경 쓰면서 해보자. 음…. 일단 로렌이랑 맥스는 각자 역할 분담을 이미 해놨으니깐…. 혹시 샬롯 브루노이즈 할 줄 알아? "


“할 수 있습니다.”


요노의 레스토랑에서 매일 아침 두 시간 일찍 출근해 버려질 야채들로 칼질 연습을 해왔던 조나단은 그때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칼질만큼은 매우 자신 있었다.


“그럼 샬롯 30개 브루노이즈 하는데 그중 10개 분량은 소스에 넣을 거니깐 따로 분리해 두고, 워크인 냉장고 들어가서 육가공류 선반 보면 내가 오늘 날짜를 적어둔 플라스틱 백에 담긴 푸아그라가 있을 거야. 스몰 다이스 할 거고 사이즈 확신 없으면 꼭 프랩 전에 나 아님 로렌이나 맥스에게 물어봐. 그리고 마지막으로 커리 비네거렛 만들건대 6쿼트짜리 캠브로 들고 와서 거기 가득 담을 양으로 만들어줄래? 레시피는 우리 가드망제 스테이션 선반 오른쪽에 항상 있으니깐 쓰고 제자리에 두면 돼. 다 하고 시간 남으면 로렌좀 도와줘. 오케이? "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조나단은 알렉스가 한 말을 노트에 정리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할 여유라고는 없었다.


조나단은 먼저 빨리 끝낼 자신이 있는 것들부터 시작했다. 칼질이었다. 먼저 샬롯 10개를 손질했다. 샬롯은 작고 브루노이즈 또한 매우 작은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써는 방법이기에 절대 떨리는 마음으로 칼을 잡아선 안 됐다. 존은 고노스케 식칼 대신 작은 페어링 나이프를 꺼내고는 칼질을 시작했다. 칼날이 샬롯을 썰어 내릴 때 내는 소리와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에 집중했다.


하나. 둘. 셋.


조나단이 어느덧 네 번째 샬롯을 손질할 때, 어느덧 그의 마음고 그리고 그의 머릿속도 더 이상 그를 방해하는 부정은 없었다.


“알렉스, 아까 말씀하셨던 샬롯 10개 브루노이즈 한 것 여기 둘까요? "


식용 꽃을 손질하던 알렉스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대답했다.


“그거 저기 소시에 스테이션에 갖다 주면 돼. "


(소시에 saucier : 주방에서 소스를 담당하는 요리사)


“아니야, 나 워크인 냉장고 갔다가 스테이션 돌아가는 길에 가져갈게. 그냥 너 자리에 둬도 돼! "


소시에 루씨가 가드망제 스테이션을 빠르게 지나가며 말했다.


“네!”


<To do list>
•샬롯 20개 브루노이즈
— 샬롯 10개 브로노이즈 - 다 하면 알렉스에게
• 푸아그라 오늘 날짜/ 워크인/ 스몰 다이스
• 커리 비니거렛 6쿼트


조나단은 노트를 펴 끝낸 업무를 체크하고 나머지 샬롯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스무 개의 샬롯이 적은 양은 아니지만 애초에 크기가 작은 야채라 칼질을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문제는 푸아그라였다. 태어나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식재료였다. 요노의 레스토랑에서 수습할 때 쿡북에서만 익숙했던 그 낯선 재료들 중 하나였다.


“알렉스, 방해해서 미안한데 혹시 푸아그라 손질 하는 것좀 보여줄 수 있어요? 제가 한 번도 손질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존은 말의 끝을 흐렸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머지 질문을 한다는 게 그저 부끄러울 뿐이었다.


“당연하지. 항상 모르는 게 있으면 이렇게 물어봐. 매우 좋은 자세야. 다 망쳐놓고 나중에 팀 전체가 욕 먹는 일도 안 생기고. 절대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 처음부터 다 알고 잘하는 사람 없다?”


“감사합니다.”


알렉스는 푸아그라 손질 하는 방법을 존에게 보여줬다. 존은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그가 손질하는 영상을 찍었다.


“왜 찍는 거야? 복습이라도 하게?”


알렉스는 존을 보며 약간의 미소와 함께 물었다.


“네. 그래야 까먹지 않고 다음엔 스스로 할 테니깐요.”


어려운 손질은 아니었다. 육각형으로 최대한 일관성 있게 다이스 하면 끝이었다. 다만 손질해야 하는 양이 많았고 온도에 예민한 재료이기에 빠른 속도가 필요했다.


“푸아그라 먹어봤어?”


“아니요.”


알렉스는 테이블 밑 냉장고에서 무화과 잼을 꺼내 테이스팅 스푼으로 작은 술을 뜨고 위에 작게 다이스 한 푸아그라 한 조각을 올려 소금으로 마무리한 후 존에게 줬다.


“먹어봐. 내가 이번 여름에 남은 무화과로 만든 잼이야. 셰프님이 메뉴를 바꾸시면서 무화과를 쓸 일이 없어져서 배고플 때 팀원들 빵에 발라먹으라고 만들어둔 건데 무화과 잼이랑 푸아그라는 기본적으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니깐 맛있을 거야 "


조나단은 한입에 다 넣고 눈을 감았다.


뭔가 모를 이 쿰쿰함. 그것을 치고 올라오는 무화과 잼의 단맛과 은은한 산미, 그리고 끝에 느껴지는 소금은 자칫 역할 수 있었던 푸아그라를 한층 고급스럽게 풍미를 잘 이끌어주었다.


“우와….”


조나단의 감탄에 알렉스는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맛있지? 하여튼 푸아그라는 그냥 이 크기로 다이스 하면 되니깐 어려울 거 없어. "


“감사합니다!”


시간은 금방 흘렀다. 조나단은 생각했던 것 보다 할 일이 빨리 끝나 로렌의 프랩도 같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정확히 3시 되기 10분 전이었다.


“혹시 제가 뭐 더 도와드릴게 있을까요? "


“오! 우리도 다 해서 테이블 스크럽 할 건데 같이 할래? "


“네!”


“너도 알겠지만 기본적으로 스테이션 전체를 수세미에

비눗물 묻혀서 잘 닦으면 돼. 스크럽 다 한 후에는 잊지 말고 꼭 마른 수건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거야. 프랩키친은 하루에 2번, 1층에 서비스 키친은 하루에 1번 스크럽 하는 걸로 알고 있으면 돼. "


조나단을 포함함 가드망제 팀원 모두가 테이블, 테이블 밑 냉장고 그리고 스테이션 벽까지 스크럽을 했다. 주방이 깨끗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조나단 사무실로 들어와.”


청소를 마치고 손을 씻고 있는 존을 본 저스틴은 사무실에서 문을 열고 그를 불렀다. 존은 손을 빠르게 닦고 사무실로 향해 달려갔다.


"네! 솊. 어떤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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