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원 Jun 15. 2024

하나가 끝나야 다음이 열린다

나의 장편 소설 부활 프로젝트

장편 소설을 완성한 후 몸은 지쳤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더 홀가분해졌다. 미루던 석사 학위 논문 작성에 바로 착수했다. 논문을 써야 한다고 의식했다기보다는 몸이 그냥 그렇게 하도록 움직였다. 왜 소설이 끝이 나고 나서야 논문이 잘 써지기 시작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밤낮없이 소설을 썼던 것처럼 학위 논문도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학위 논문은 12월 중에 1차 발표가 있었다. 심사 위원 교수들 앞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디펜스를 해야 했는데 세 명의 교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까지 참여하는 꽤 큰 행사였다. 그때까지 해본 발표 중에서 가장 가슴이 떨리는 자리였다. 


논문을 발표하면 세 가지 결과를 받는데, 대폭 수정(Major Revision), 부분 수정(Minor Revision), 불합격이었다. 부분 수정을 받지 못하면 졸업이 불투명해지고, 그건 앞으로의 모든 계획이 뒤틀어지는 대형 참사를 의미하기도 했다.  


논문을 써 본 사람들은 공감을 할 텐데,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시작해도 초기에 논문 아이디어를 세우고 전체적인 틀을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꼭 논문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처음 시작이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소설을 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논문에 대한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고, 틈틈이 논문에 대해 고민해 보았지만 이거다 싶은 주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내가 속한 대학원 프로젝트 팀은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주제로 노약자에 대한 디지털 미디어나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했다.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어느 날, 초등학생이었을 때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던 기억이 불현듯 살아났다. 몸에 열이 나서 감기인 줄 알았는데, 장기 중 하나에 급성 염증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원이라는 것을 했는데, 그때의 입원 경험은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적어도 어릴 때만큼은 '입원'이라는 이벤트는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몸이 아파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도 마음에 큰 상흔을 남기지만, 나를 보러 온 친척들의 불안한 눈빛과 매일 돌아가며 보호자 노릇을 해야 했던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마음까지, 초등학생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나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프로젝트 팀의 비전에 딱 맞아떨어지는 개인적인 경험이 떠 올랐고 논문을 위한 개인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내가 입원했을 때의 기간은 대략 한 달 정도였는데, 당시 나의 감각으로는 거의 일 년과도 같았다. 정말 하루하루가 지루했고 바깥세상이 너무 그리웠다. 


대학원 프로젝트 팀은 도쿄의 한 병원에서 장기 입원 중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격주로 자원봉사를 다녔다. 자원봉사라고 해서 별 것은 아니고 그냥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입원 경험과 도쿄 병원에서의 봉사 활동에서 영감을 얻어 병원에 입원 중인 아이들을 위한 만지는 디지털 장난감을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떠 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디어는 최종적으로 디지털 보드 게임 형식의 디지털 미디어였고 전 세계 동물원의 실사 카메라 링크를 음성 인식 솔루션으로 불러내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아주 단순한 접근이지만, 병원에서 갑갑해할 아이들이 실제로 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바깥세상을 구경하면 좋겠다는 콘셉트이었다. 미디어를 개발하고 간단하게나마 실제로 병원에서 테스트를 하기까지 약 3개월이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지금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완성품이지만 그래도 자랑스럽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기간이 없었던 것 같다. 앞서 소설을 쓸 때도 치열했지만 그땐 골방에 혼자서 처박혀 있었다면,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혼자서 사물을 만들고, 조립하고, 프로그래밍하고, 병원을 찾아가고... 등등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일을 혼자서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해야 했다. 

 

연구, 기획에 개발, 간단한 실증 테스트까지 끝낸 논문은 다행히 일본인 교수님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논문 발표 결과는 부분 수정(Minor Revision) 등급이었고 약간의 부자연스러운 일본어 문장을 수정하는 정도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첫 논문 발표 이후 부분 수정(Minor Revision) 평가를 받은 학생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 대폭 수정이거나 몇 명의 유학생은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리고 나름 노력의 대가로 무사히 일본 유학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발표에서 논문이 통과된 덕분에 또 하나의 행운이 있었다. 12월에 최종 논문을 제출하고 다음 해 3월 말에 열리는 졸업식까지 한국에서 머물기로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고, 다른 친구들이 엄청난 고생을 할 때 나는 한국에서 TV 화면으로 그 장면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 때문에 그해 모든 일본 학교의 졸업식은 열리지 않았고, 나의 유학 시절도 졸업장 한 장만 있을 뿐 학사모를 쓰고 졸업식 가운을 입은 사진이 없어 아쉽기도 하다. 


유학 생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작한 소설 쓰기는 오히려 나의 연구와 논문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하나를 완성시켰을 때의 성취감은 다음 일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끝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또한 반드시 끝을 내야 하는 것은 어떻게든 끝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가 끝나야 다음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전 10화 낮과 밤이 뒤바뀐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