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원 Jul 06. 2024

태어난 생명을 어떻게 할까?

나의 장편 소설 부활 프로젝트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대학원 석사를 무사히 2년 만에 끝마쳤고, 덕분에 일찍 한국에 돌아올 수 있어서,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뻔했던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도 피했다. 2년간의 짧은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예전과 같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오랜만의 직장 생활은 힘들었지만, 한국말로 나의 생각을 마음껏 말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고, 외국인으로서 이방인과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아서 한동안은 행복하고 평안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계속 걸리는 것이 있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완성해 둔 장편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반드시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힘들게 완성해 둔 소설이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의 파일만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 어떻게 책으로 출간할 수 있을지 알아보니, 신인 작가의 작품은 문학상에 당선되는 방법 이외에는 길이 없어 보였다. 


그때부터 몇 개의 신인 문학상을 살펴보았고, 기존에 그런 상을 받았던 소설들을 읽어 보았다. 어떤 소설이 상을 받는지 읽어 보고 나서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드라마 같은 소재를 다루는 작품은 있었지만 완전히 SF 설정, 특히 시간여행을 주제로 상을 받는 소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을 받는 소설은 모두 진지했고, 문장은 치밀했으며, 현실을 한 단면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색하는 작품이었다.  


요즘은 SF 소설 상도 많고 장르 소설로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당시에는 작가로서 권위를 부여하는 상은 모두 정통 문학상이었다. SF, 시간여행 같은 소재로 쓴 소설이 받을 수 있는 상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나는 나의 소설이 장르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에서 책을 내긴 했지만 전형적인 장르성이 강한 소설은 아니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쓴 소설이 어떤 유형인지 헷갈렸고 그래서 상을 받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오리무중이었다.  


이왕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 정통 문학상을 받을 만한 소재와 주제로 다시 장편 소설을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장편 소설을 쓴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기에 소설 쓰기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짧은 소설을 계속 하나씩 완성해 나갔다. 


단편 소설을 하나 쓸 때마다 일본에 왔던 작가 친구 H에게 단편 소설을 보냈고, 친구는 나의 소설을 읽어보고는 신춘문학상에서 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한껏 격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내 글을 봐주는 편집자도 독자도 없이 계속 단편 소설을 써 갈 수 있었고, 이때 써 두었던 단편 소설은 2021년에 '아무도 모르는 악당'이라는 제목으로 단편 소설집으로 엮어 냈다. 



바쁜 직장 생활 와중에도 계속 소설을 쓰긴 했지만, 작가 친구 이외에는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 소설 쓰기 작업에 점차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작가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을 하는데, 나의 소설을 투고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때 투고해서 상을 받고 소설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공모전에서 상을 받는 과정에서 인생이란 함부로 속단할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시간여행 소설을 써 놓긴 했지만 이런 소재의 소설로는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책을 출간할 수 없다고 낙담했고, 나의 소설은 결국 노트북 안에서 파일로만 존재하다가 언젠가는 쓰레기통으로 옮겨질 운명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간의 기다림 끝에, 어쩌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공모전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 '타임리프'라는 주제로 공모전이 생겼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이때 나는 상을 받고 무척 행복했지만 최종 결선에서 나의 소설과 경쟁하던 또 다른 소설은 몇 년 후 더 큰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안타깝게 최송 심사에서 떨어지고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작가 지망생의 꿈은 사라졌을 것이다. 


모든 것이 운의 영역이긴 하지만, 기다리면 때가 오고 그 때라는 것은 결국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행운을 안겨다 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아마도 타임리프 공모전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작가 지망생이 급하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겠지만, 그들의 재능이 나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타임리프라는 주제로 내가 훨씬 더 오래 고민하고 다듬었기 때문에 내가 상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장편 소설을 탈고하고 실제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약 5년간의 기다림은 이후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많은 의지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언제 올지 모를 행운을 잡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계속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해보고 작은 성취라도 느껴본 사람은 그 교훈에 대한 믿음이 더 견고해지기 마련이고 결국 또 다른 행운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단 1%라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계속하는 것뿐이다.   




 




  

이전 11화 하나가 끝나야 다음이 열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