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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찡 Mar 30. 2016

우리가 더 이상

08. 내 삶에 "너"가 없다면.

 우리는 주말에 주로 만난다. 평일엔 서로의 일에 바빠 만날 시간을 잡기가 굉장히 어렵다. 웬만한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주말은 함께 있는 시간이다. 어느 누구나 그렇듯 주말은 굉장히 시간이 빨리 흐른다. 야속한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면 우리는 잡은 손을 어떻게 손끝이라도 닿아 있으려 애쓴다. 떨어져 있더라도 상대의 하루가 어찌 흐르는지 메시지로 공유하며 그리움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잘 잤냐는 메시지를 시작으로 출근하면서 날씨가 쌀쌀하더라는 말, 서로 하루의 시작을 응원하는 말들을 나누며 산다. 3년차 연인이 되다보니 어느정도 습관적인 행동이 된 것 같기도 한데 우리는 떨어져있을땐 자주 메신저를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바쁜 하루들이 쌓여 피로도 함께 쌓이던 어느 날 아침 일이다. 출근을 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의 메시지를 받았다. 일어나자마자 일을 한다는 그는 전날 밤에도 늦게까지 일을 한 뒤라 엄청 피곤해했다. 올빼미인 그는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삼시세끼 좀 덜 챙겨먹더라도 아침잠을 채우는 게 중요했던 그가 뭘 먹긴 먹어야하는데 뭘 먹어야할지 모르겠단다. 

"맥모닝"

- 별루 안땡김


어쩌라는 거야. 짜증이 났다. 자기만 일해? 그래도 너는 출근 안하고 집에서 바로 일해도 되잖아. 쏘아붙이고 싶었다. 제안서 써야할 게 책상 한 가득 놓인 나에게 태평하게 아침 식사 고민이라니! 

그렇다고 내가 화를 내거나 짜증낼 순 없지. 그건 옳지 못하니까. 시비를 걸어서 좋을 게 없다. 


"그럼 뭐 너 알아서"


정말 저 일곱 글자를 감정 없이 그대로 전송했다. 

그리고 3분 뒤 


- 알아서 해? ㅋㅋㅋ 넘하는고만.


미안해. 너의 여자친구가 딱 요 수준이다. 나는 여기에서 짜증을 맘껏 부리기 보다는 그냥 먹고싶은 걸 먹으라고 마무리하고 일에 집중하는 걸 택했다. 진짜로 할 일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일을 하기로 한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일종의 돈오(頓悟)였다.

너 정말 걔 없으면 어쩌려고 이래?



나는 살면서 늘 들었던 말이 있다. "넌 정말 착한 남자 만나야 한다" 고. 낳아주신 부모님부터 친한 친구들까지 내 성질머리를 다 받아줄 수 있는 남자는 그저 착한 남자여야 한다고.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인 K양은 한국엔 그럴 남자가 없을 것 같다며 외국인을 만날 것 같다는 말까지 했었다. 어느정도 동의했다. 나는 온유함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다. 거친 여자... 

또 하나는 "꼭 그렇게 이겨먹어야해? 끝을 봐야겠니?" 란 말이다. 비뚤어진 경쟁심리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유아독존인 성격은 연애를 하는데 애로사항이 상당히 많았다. 지난 연애에서 거쳐간 남자들도 하나같이 "넌 너무 이겨먹으려고 해."라 말했다. 꽤 경험이 있다면, 상대를 존중해줄 법도 한데 나는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애인과 경쟁했다. - 그들은 절대 나와 경쟁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어찌됐든, 내 성격을 오롯이 다 받아주는 착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지금의 남자친구다.   


그는 천성적으로 경쟁보다는 평화로운 것을 좋아했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다. 살이 쪄서 외모에 어떤 변화가 생겨도 그저 예쁘다고 하고 그 특유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에게 콩깍지란 원래 갖춰진 옵션 같은 것인지 한 두달도 아니고 3년째 한결 같으니 말이다. 예민해서 변덕스러울 것같이 생긴 비주얼인 그이지만 기본적인 성실함과 한결같음을 갖추었다.


반면, 나는 상당히 제멋대로다. 천성이 못된 건지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에게 상처 주는 말도 서슴지않았다.

지난 3년간, 나는 헤어지잔 말을 꽤 여러번 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나를 잡았다. 그리고 절대 먼저 헤어지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내게 소홀해지는 것 같으면 '너 내가 이러다가 다른 사람 만나면 어쩌려고 그래?' 라며 그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때에도 그는 내가 떠날 것이 무섭다고 인정하면서 자기 곁에 끝까지 있어달라고 했다. 꽤 묘한 의기양양함을 느끼며 나에게 잘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말 난 그가 없어도 괜찮을까?


그가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더 이상 연인이 아니라면?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시간이 다 과거의 기억으로 남겨야한다면?

당연히 괜찮지 않겠지. 나는 매우 폐인처럼 살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아플 것이다.', '눈물이 날 것이다.' 같은 일차적인 반응 말고 다른 결과를 생각해봤다.

그와 이별한다는 건 우리가 함께 했던 사소한 행위들을 더이상 할 수 없을 것이란 의미였다. 내 삶에 그가 사라지는 것은 3년간 익숙해진 많은 기억들과 이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밤공기를 좋아하는 나와 같이 손잡고 산책하는 이가 없어지는 것이고, 함께 듣던 음악도 한동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바닷가에 깍깍 대는 갈매기 떼들에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어진다.

내가 입가에 음식을 한껏 묻히고 먹어도, 또 음식을 바닥에 질질 흘리며 먹어도 "아이구 왜 이렇게 칠칠맞을까~" 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비를 맞거나, 아프거나,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내 건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이 점점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그간 만난 사람들도 참 착한 사람들이었지만,  지금 남자친구는 하나님께서 나 사람으로 만드려고 붙여주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제발 멋대로 행동하고 성질부리는 것 좀 고치고 정말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래봐야 호르몬의 장난질 아니냐고 말한다. 옥시토신과 도파민의 조합으로 끽해야 유통기한이 2년짜리라 하면서. 그 이후엔 정으로 만나는 거라고 후려치기도 한다. 글쎄, 한결같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설레고 불꽃같은 사랑의 형태와는 또 다른 사랑을 배우게 됐다. 적어도 유통기한 2년짜리보다는 훨씬 더 길고 깊은 애정을 느끼는 사랑임은 확신한다. 


그가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다른 사람도 나에게 사랑을 줄 수 있겠지만 그가 주는 사랑 같은 건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내게 온 세상을 주었으니 말이다. 



"너는 내가 널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떨 거 같아?"

- 뭘 어때. 죽지. (상당한 필터링을 거쳤다.)


훗. 더 잘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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