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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필 Aug 26. 2022

우윳빛깔 놀이터


"으으윽~ 아..안돼! 흐으.. 이게 뭐야! 다 부서졌잖아."

"야! 남자애가 뭘 그런 걸 가지고 우냐? 애기도 아니고."

"뭐? 이씨.. 나 집에 갈래!"


성모는 내가 아는 열 살 남자아이들 중에 피부가 가장 뽀얬다. 그 때문인지 왼쪽 윗입술 위에 붙은 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 성모의 얼굴을 볼 때마다 입이 근질거렸다. '하얀 두부 위에 검은깨 하나를 뿌려놓은 것 같다고 놀려볼까?' 아마 목소리 큰 세나가 있었다면 키득키득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 주었을 텐데. 그날따라 세나는 무슨 일인지 잠잠했다. 그러고 보니 이발소집 딸인 신애도 오기로 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나타날 기미가 없다.  


"어? 저기! 저기!!"

"또 왜~~ 이러다 내 모래성까지 무너지겠네.

조용히 좀 해!"   


성모와 나는 흙장난을 하고 놀았다. 보통은 학교 운동장에서 오후 시간을 때우는데 그날은 길 건너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우유 배달을 하는 엄마를 따라 자주 들르는 곳이기에 옆동네라 해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라도 엄마의 사정거리 안에 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뭐 해! 엄마가 동생 잘 챙기라고 했지?"  


내 예상이 맞았다. 엄마가 왔다. 그런데 엄마의 화도 같이 왔다. 머리가 핑~그르르 돌고 관자놀이 부근이 얼얼하다. 몇 대나 맞은 걸까. 어깨까지 축 늘어진 내 머리카락이 낡은 빗자루처럼 헝클어진 걸 보니 두어 차례는 더 되는 것 같다.


그 시각. 하늘에는 은은한 주홍빛이 점점 더 붉게 퍼지고 있었고, 순식간에 달아오른 내 귓바퀴도 노을에 질세라 더욱 붉게 물이 들었다.


난데없이 나타나 불같이 화를 내던 엄마의 거친 언행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덩달아 떨고 있던 성모의 흔들리는 시선이 몇 배는 더 아팠다. 하지만 그보다 가슴이 미어지는 건.. 비릿한 우유 냄새였다. 엄마 주위로 실바람이 춤을 출 때마다 콤콤한 우유향이 코를 찔러댔다. 그 바람에 꾹꾹 참았던 눈물이 와락 터졌다. 푹 숙인 고개 밑으로. 망가진 모래성 위로. 뚝뚝. 설움이 떨어졌다.




'에잇. 창피해. 난 성모처럼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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