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쌀독에 쌀을 부었나

중유럽 마트 여행자의 고백

by 조수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배고프지?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얼른 밥 해줄게."


부엌 창문이 불그스름하게 물든 걸 보니 저녁노을이 우리집을 타 넘고 있나 보다. 그 바람에 마음이 분주해진 엄마는 다급한 손놀림으로 주방 선반에 있는 쌀독을 열어젖힌다. 여느 때 같으면 "샤샤샥~샥샥~" 쌀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올 텐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공허한 바람소리만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응? 아냐. 우리 오늘 저녁엔 그냥 라면 먹을까?"






그날 우리가 무슨 라면을 먹었는지, 면발은 꼬들했는지 아니면 퉁퉁 불어서 국물 몇 모금으로 배를 채웠는지... 그런 기억은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나의 온 신경은 텅 빈 쌀독에 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저 미루어 짐작하건대, 열 살 남짓한 작은 소녀는 라면 그릇을 눈앞에 두고도 먹는 둥 마는 둥 고사를 지냈을 게 분명하다. 어설픈 젓가락질로 면발을 휘이~휘 감아 돌리는 시늉만 할 뿐 머리로는 온통 '어쩌나. 쌀독에 쌀이 똑 떨어졌네. 그래서 엄마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구나' 하고 딴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때부터였나 보다. 그날의 텅 빈 쌀독이, 텅 빈 엄마의 눈이... 오늘날 내가 '마트 여행자'가 되도록 불씨를 지폈다.



어느 중유럽
마트 여행자의 고백



가난에 치를 떨었던 내 유년기는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것처럼 잔혹했다. 80년대 생인 내가 땟거리 걱정을 했다고 하면 어떤 이는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어린 날은 그토록 헛헛했다. 그렇게 늘 굶주렸던 아이가 어느샌가 숙녀가 되어 객지에서 밥벌이를 하게 됐을 때, 첫 월급을 들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다른 곳도 아닌 ‘마트’였다. 어떻게 백화점도 아니고, 분위기 좋은 음식점도 아니고 왁자지껄한 마트일 수가 있지? 내가 생각해도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첫 월급의 기억치고는 참으로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누가 뭐래도 이게 나니까. 향이 좋은 화장품이나 그럴싸한 파스타보다 휴지나 샴푸가 훨씬 더 좋았다. 그때부터 이어온 그곳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지금까지도 쭉 유효하다. 예나 지금이나 집에 생필품이 꽉꽉 들어차야 마음이 풍요롭달까. 이게 바로, 내가 이 머나먼 유럽까지 와서 자발적 마트 여행자가 된 이유다.



체코 오스트라바 지역의 현지 마트



주부로 살기 전에도 장보는 걸 일삼았는데 이젠 공식적인 명분까지 얻었으니 오죽할까. 평일에는 아이와 함께 집 앞에 있는 현지 마트를 누비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창고형 대형마트로 간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하다 싶으면 한인마트를 찾아 익숙한 맛으로 모국을 향한 그리움을 달랜다.

지금은 독박 육아 중이니 예쁜 옷도 입을 수 없고 색조 화장도 할 일이 없지만 그에 반해, 냉장고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해졌다. 장에 다녀와서 이것저것 채워 넣다 보면 "와~ 이걸 언제 다 먹지" 싶을 때도 있지만 사실 그런 걱정일랑 할 필요가 없다. 식구는 단출해도 먹성 좋은 세 살 아들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기에 뭐든 사서 재 놓기 바쁘다.

삼시 세 끼에 상시로 간식까지 챙겨 먹이다 보면 금세 하루가 저물어 있다. 그 덕에 다른 능력은 퇴색해도 요리 실력만큼은 수직상승 중이다. 하루 종일 솥뚜껑 운전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붙었는지 얼마 전부터는 김치에도 손을 뻗었다.





처음에는 겉절이나 물김치로 대충 버텨보려 했으나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작심하고 포기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는데 힘은 들어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있었다면 시도 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해외라는 척박한 환경이 솜씨 없던 나를 제법 태가 나는 주부로 만들었다.

그러니, 세상살이가 다 좋을 것도 다 나쁠 것도 없다. 상황이 궁할수록 사람은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니까.



김치가 숙성되듯 나의 삶도

맛있게 무르익는 중이다



이렇게 생각을 고쳐 먹으면 고된 집안일도 영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자주 가는 마트에 알배기 배추가 나오면 통통하게 속이 꽉 찬 것들로 데려다가 한 번에 두어 포기 씩 담가 먹는다. 반나절 동안 절인 배추에 감칠맛 나는 양념을 버무려 냉장고 한편에 모셔두면 당장 먹지 않아도 뱃속이 든든해진다.


그 기분에 취해 오늘도 마트 여행을 나선다.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고... 그러다가 문득 그날의 텅 빈 쌀독이 생각났다. 그 시절, 우리집 쌀 장고는 텅텅 비어있는 날이 부지기수였는데 누가 이렇게 요술을 부렸을까. 누가 내 가난한 쌀독에 쌀을 그득히 부어 놓았을까.


끼니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열 살 그해. 그로부터 30여 년을 건너온 세월의 다리가 마법이라도 부렸을까. 아니면 더 이상의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노라며 피땀 흘려 곳간을 채운 내 부모님의 공일까.






뭐가 됐든 참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머나먼 이국 땅에서도

배곯지 않고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지난날 텅 빈 쌀독의 악몽도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게 되어서.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트 여행자’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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