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취향(趣向).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방향.
이런 건 나이가 들수록 어느 한쪽으로 선명하게 굳어진다. 예컨대, 스무 살의 나는 수시로 길을 잃었다.
화장부터 옷, 헤어와 액세서리까지 온통 수수께끼였다. 그리고 이런 류의 고민은 생각보다 꽤 오래 지속됐다.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술에 대한 취향, 여가에 대한 취향, 사람에 대한 취향으로 이어졌다. 자주 가는 단골집을 만들었고, 좋아하는 장르의 노래만 찾아 듣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편식을 했다. 그렇게 익숙한 것들이 편하다고 느낄 때쯤... 결혼이라는 최대의 변수가 나타났다.
만약 내 인생을 안내하는 전용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어떨까? 지금쯤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이런 안내 음성이 흐를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건 확실한 경로 이탈이다.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고수해 온 나의 길, 나의 색깔이 결혼이라는 소용돌이를 만나 몰라보게 무색해졌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골프장에서 벌어졌다.
남편: 어때? 와 보니까 괜찮지?
나: 그러게.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른데?
그냥 호숫가에 있는 공원 같아
남편: 그래서 여길 꼭 보여주고 싶었어
나: 그런데 진짜 칠 수 있을까?
애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안될 것 같은데...;;
지난 봄, 처음으로 유모차를 끌고 골프장이라는 곳에 가봤다. 정확히 말하면 야외에 있는 골프연습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른 운동도 아닌 '골프'를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결혼 초부터 이 문제로 옥신각신했던 우리 부부. 남편은 회사생활의 필수요소라 했지만 그런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는 나는 내내 불만이었다. "우리 분수에 가당키나 해?", "그렇게 할 거 다 하고 살면 대출은 언제 갚아?" 이런 말로 남편을 몰아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체코 발령이 확정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의 골프 생활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남편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아끼는 것도 좋고 아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선 시 해야 할 것은 우리 둘의 행복이라는 거다. 부부가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그 부분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없다고는 볼 수 없다. 남편에겐 경제적인 이유를 들먹였지만 솔직한 마음은 '사치'와 '불륜'의 매개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편견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검소한 부모님 밑에서 소박하게 자란 내 정서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세 살 밖에 안 된 어린 아들이 있다. 한국에서처럼 친정 찬스, 시댁 찬스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4시간 껌딱지처럼 붙여놓고 보살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골프를 멀리해야 할 이유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무리수를 두었다. 이번만은 남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가 울고 보채서 허탕을 치고 오더라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시작부터 난관이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일단 트렁크에서 유모차부터 꺼낸다. 내가 유모차에 아이를 앉히고 기저귀 가방을 챙기는 동안, 남편은 양쪽 어깨에 골프가방을 짊어진다.
그야말로 가관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유모차를 대동한 일행은 우리뿐이다. 아무리 외국이라지만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남들의 시선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아이의 기분이 나빠지기 전에 재빨리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자판기에서 공을 한 바구니 뽑아 들고 잰걸음으로 잔디밭 위에 섰다.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눈앞에는 푸른 하늘과 드넓은 초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등 뒤에선 아기띠로 하나가 된 아빠와 아들이 관객처럼 날 지켜보고 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골프채를 든 내 모습도 참 낯설지만 아기를 데리고 여기까지 오다니!! 이건 가치관의 ‘혼란’ 정도를 넘어 ‘붕괴’ 수준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상황은 벌어졌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그런 다음,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골프채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발 밑에 놓인 공을 탕~ 때렸다.
. . .
당연히 제대로 날아갔을 리가 없다. 모든 초보자가 그렇듯 힘이 너무 들어간 게 문제다. 다시 한번 호흡을 고르고 차분히 공에 집중한다.
그래, 맞아. 이런 느낌이었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기분을 정말 오랜만에 가져봤다. 한국에서는 워킹맘으로 사느라 몰랐고 체코에 들어와서는 살림과 육아에 치여서 잊었다. 주어진 의무를 온몸으로 떠안다 보니 정작 내가 보이질 않았다.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나 조차도 외면해버렸다.
하지만 ‘행복’은 셀프다. 불행한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행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엄마의 감정은 여과 없이 아이에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행복해야 한다. 비록, 유모차를 끌고 골프장에 나타나는 불상사(?)를 범할 지라도.
그런 마음을 먹은 지도 서너 달이 지났다.
며칠 전, 밤에 자다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는데 "깔깔깔~ 꺄르르르" 아이가 잠결에도 소리 내서 웃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해맑은 웃음이었다.
그 후로, 밥을 할 때에도 빨래를 돌릴 때에도 그날 들었던 웃음소리가 불쑥불쑥 가슴을 스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이가 꿈에서도 웃고 있다는 건 나도 그만큼 웃었다는 얘기니까. 그래, 이만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