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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걷기 싫은 줄만 알았지

철들지 말자, 참지 말자

by 쳄스오모니


"날이 추워서 그런지 잘 안걸으려 하더라"

"사춘기가 끝났나. 의젓해졌어"


그런 줄 알았지.

어느날 부터 쳄스가 1시간 이상 걸으려 하지 않길래,

보더콜리 피가 있어도 사춘기가 지나면 에너지가 좀 꺾이나.

내가 산책을 열심히해서 "두손 두발 든건 아닐까?"라고 아주 잠시 뿌듯했다.

쳄스 발을 괴롭히던 고약한 녀석.


발을 씻기는데 갑자기 툭 걸리던 것.

발바닥 안에 잡히는 씨앗

찾아봤더니 풀씨가 문제란다.

화살 모양이라 움직일수록 파고드는 그것.

2주에 걸쳐 약을 먹이고, 핀셋으로 살을 헤집고.

심하면 수술해야한다는데, 그나마 수술은 피했다.


계속 할 말 있어 보였는데, 이 못난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고 좀 가뿐하게 걷는가 싶더니.

또 할 말 있어 보이던 너.

속도 모르고 "놓고 간다?" 하면

마를 놓칠세라

꾸역꾸역 따라오던 너.


하네스 쓸림ㅜㅜ

우연히 봤더니 이번엔 (사람으로 치면) 겨드랑이가 문제다.

몸집이 커져 얼마 전 바꾼 하네스가 계속 쓸고 있던 거였다.

우리가 큰 신발을 신으면 뒷굽이 벗겨지고 피가 나듯.

그것도 모르고 그저 이 못난 엄마는 따라오라 했으니.

나는 상등신이다.

살아난 쳄스는 귀가 거부 중

다 나을때까지 목줄로만 산책을 했더니

그저 신나게 잘 다닌다.

집에 가기 싫다는 듯.

내가 언제 의젓해본 적이 있냐는 듯.

그래 이게 너지. 우리 쳄스지. 강아지란 이런거지.


아프면 차라리 으르렁 거리고, 물려고 하고 그러지. 그럼 이유를 더 빨리 찾았을텐데.

그저 길 한복판에 서서 눈으로만 신호를 보내던 너.

그 순한 마음마저 빨리 눈치채지 못해 미안해.

엄마는 너가 의젓해지고, 착하고, 순한게 못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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