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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춥고 불편해도 너와 함께라면

by 쳄스오모니


강아지들은 눈을 좋아한다.

발바닥은 차갑지만 사실 강아지들에게 이건 큰 문제가 안된다.

쳄스는 눈을 직접 먹기도 하고

누워 비비기도 하고

갓 잡힌 활어마냥 팔딱팔딱 뛰기도 하고.


너를 만나기 전 나는 눈이 참 싫었다.

눈이 올 때 예쁜건 잠시 뿐.

금세 구정물이 되어버리는

심지어 날마저 추워지면 미끄러지기도 일쑤

순간의 아름다움 뒤에 오는 필연적 더러움과 위험함이 싫어서였다.


지금도 나는 눈이 싫다.

그런데 이제 눈을 맞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냥 네가 좋아하니까.


너와 같이 걷고 또 걷는다.

이 눈은 분명 염화칼슘으로 뒤덮여 너의 발을 힘들게 할 것이고

금세 얼어서 나의 출근길 발목 잡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네가 좋으니, 뒤의 불편함은 생각하지 않고 걷고 또 걷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눈길을 걷는 게 너와 함께 하는 삶과 똑 닮았다고.

겉보기에는 반려견과 산다는게 자못 여유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눈 내린 뒤를 걱정해야하며

언제 넘어지고 다칠까 노심초사.

날씨는 왜 이리 시린건지.

외면적 평화는 내면의 폭풍을 수반하는 건데.


근데도 좋다. 아무리 힘든 길이어도, 거친 미래가 예고돼있어도

눈길을 헤치듯

너가 좋다면 같이 걷고.

미끄러지면 미끄러지라지.

덤덤하게. 위태로워도 버텨가며

너랑 나도 그렇게 살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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