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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춘기 능가하는 그 시기, 개춘기

밥도 안먹기. 대뜸 주저앉기. 공복 토하기. 이유없이 승질내기

by 쳄스오모니


내 아이에게서 낯선 냄새가 느껴진다




쳄스는 개춘기(개+사춘기)다.

눈치보는 중. 진짜 귀엽다

반항할 줄 모르고, 주는 대로 다 먹고, 오라는 대로 다 올 줄 알았는데 이제 주장이 생겼다.

마치 "우리 아들은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하는 엄마들 같달까.


첫 징후는 밥이었다.

사람이든 개든 곡기를 끊으면 죽는다 하지 않았던가. 돌도 씹어먹던 어느날부턴가 밥을 안먹기 시작했다.

다녀오면 빈 그릇이 반겨줄 줄 알았는데, 밥은 그대로.

냅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간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그럴 수 있다나.

검진 부터 시작해 100만원이 넘는 돈을 쓰고야 알아낸 원인.

독한 마음으로 밥을 굶겨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치명적 귀여움을 이기지 못하고 간식을 몰래 주신다. 이건 뭐, 전쟁해야하는 대상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다음, 이젠 산책때도 자기 주장을 한다. 가기 싫으면 주저앉고, 길바닥에 엎드리기도 부지기수. 수틀리면 억울한 표정으로 왈왈. 옷이라도 입히려 치면 냅다 꼬리흔들며 도망간다. 빨래를 널고 있으면 가장 찢기 좋고, 물기 좋은 양말, 실크 소재 옷부터 챙겨간다. 치마를 입으면 치맛단부터 뜯는다. 요샌 혼내도 도망간다.

양말을 물고 결국 도망을 왔다. 정말 귀엽다.


카르마. Karma. 業


그러하다. 나 또한 사춘기때 그랬다. 부모님이 밥을 해주시면 맛이 없다고 징징. 늦었다고 징징. 간이 안맞다고 징징. 취향이 아니라고 징징. 지금 생각하면 거의 정신병자 수준의 발작이었으나 그땐 그게 당연했다. 왜냐면 사춘기니까.


또 부모님이 옷을 사줘도 싫고, 안사줘도 싫다. 또래친구들이 다 가진거 사주면 흔해서 싫고, 없는 것 사주면 유행에 뒤쳐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혼내면 마음 속으로 니나니나니고리라랄라~~~


아 내가 저지는 죄를 돌려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요새는 우리애 개춘기가 퍽 밉진 않다.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전쟁이지만, "나 정말 부모가 됐구나"싶다. 원래 사춘기의 가장 큰 타깃은 가까운 부모니까.


그리하여, 전쟁이다.

너는 굶어라. 나는 밥그릇을 치울테니.

주저앉아라. 나는 끌고 갈테니.

성질 내봐라. 페트병으로 바닥을 땅땅.


그럼에도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그 어떤 반항을 해도 나는 늘 너를 사랑한단다.



우비 입고 심기가 안좋으면 산책거부. 그럼에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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