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을 맞이해 아들과 함께 우리 가족은 판교 어머님 댁을 오랜만에 방문하였다. 코로나 19를 핑계 삼아 매일의 일상이 뭐가 그리 바빴는지.. 정말 못난 며느리다.
오랜만에 마주한 어머님의 얼굴은 어느새 주름이 하나 더 깊게 파여있어 왠지 모르게 어딘가 낯설다. 앉았다 일어나실 때에도 엉거주춤 힘겹게 겨우 일어나시고, 무릎과 팔꿈치에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계신 것처럼 거동이 불편해 보이셨다.
직사각형의 네모 반듯한 커다란 밥상에는 이제 갓 지은 따끈한 밥상이 거나하게 한상 차려져 있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 육개장이 먹고 싶다던 남편의 소원이 성취되는 날이다. 어머님 표 육개장은 두툼한 고기 한 덩이와 함께 지금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향이 진한 제주도 고사리 한 움큼, 큼직 큼직하게 썰어 넣은 시원한 무 반 통, 듬성 등성 잘라 넣은 대파 넉넉히 한 줌, 직접 빻은 고춧가루와 알싸한 마늘 크게 한 스푼을 넣고 한 솥 푹 끓여 칼칼하고 얼큰 한 맛이 아주 일품이다.
오늘은 특별히 고춧가루를 뺀 뽀얀 육개장 한 그릇도 새싹 같은 손자의 밥상 위에 올라와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육개장을 한 숟갈 떠서 후후 불어 손자의 입 속에 넣어주니, 생애 처음 먹어 본 국물의 진한 맛임에도 자기 입맛에 맞는지 다른 반찬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연거푸 국물만 들이켠다.
"엄마, 나는 이 국물이 너무 좋아!"
유난히 몸에 열이 많으신 어머님이 뜨거운 불 앞에서 아들과 손자 그리고 며느리에게 따듯한 밥을 손수 지어 먹이려 새벽같이 일어나 비 오듯 땀 흘리며 준비하신 그 감동 어린 손길을 이제 겨우 네 살 된 손자가 먼저 알아본다. 아들과 며느리는 쑥스러워 그저 맛있다고 한마디 던지는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밥상을 치우고 있던 내 두 손위에 어머님은 쌍가락지를 가만히 올려놓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요즘 자꾸 깜빡깜빡하고 예전 같지 않은데, 죽기 전에 우리 며느리한테 내가 줄 건 없지만 이거라도 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손자가 태어나기 일 년 전 갑자기 쓰러지셨다. 언제부터 어머니와 함께 동거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동그란 어떤 것이 어머님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느린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로하신 어머니에게 수술은 더한 부담이었고, 어머님도 한사코 거부하셔서 우리는 동그란 그것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였다(물론 의사 선생님과 매년 만나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는 어리석게도 어머님이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계시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혜롭고 현명한 어머님은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껴안으시며 조용히 죽음을 준비하고 계신다.
어머님의 손자는 이제 겨우 네 살이 되었고, 입이 짧은 손자이지만 무슨 마법을 부리신 것인지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무슨 음식이든지 꿀떡 끌 떡 잘도 받아먹는다.
야채를 입에도 안 대던 손자는 어머님이 슥슥 무친 콩나물 무침을 손으로 허겁지겁 집어먹는다. 몇 날 며칠을 끓여 만든 어머님표 사골국은 입맛 없는 손자의 만능 해결사가 되어 떡국도 끓여 먹이고, 국수도 삶아주고, 급할 땐 하얀 쌀밥을 말아 후루룩 먹이기도 한다. 어머님은 어떻게 나도 모르는 손자의 입맛을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알아채셨을까.
몇 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신 어머니는 손자의 돌을 맞이하여 한 편의 시를 선물해주셨다.
새싹
새싹처럼 피어나는
나의 손자
만지면 다칠세라 보기만 하여도
귀엽고 꽃같이 예쁘다.
네가 나를 할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고맙다,
사랑한다,
너를 만나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다.
언제나 맑고 씩씩한
내 사랑하는 손자가 되어주렴.
사는 날 동안
너를 위해
맑은 영혼이 되기를 기도할게.
오늘도 우리는 남산만 해진 배를 끌어안고 어머니의 양식을 한 아름 짊어지며 어머님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