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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채원 May 11. 2023

9. 천육백명에 국제회의통역사는 저 하나입니다 3/3

회사에 통번역파트가 따로 있거나 부서장이 업무분장을 하는 조직도 있지만 당시 우리 회사는 통번역 업무가 나에게 직접 연락하는 시스템이었다. 직속상관인 차장님은 다른 층에 계셔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도 했고, 통번역은 내 관할이라고 자율성을 보장해주셨다.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해준다는 것은 능력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 같아서 감사한 일이지만 확실히 업무량이 많기는 했다. 당시는 통번역 업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지금보다 더 부족했고, 조직 내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통역은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거라는 인식이 있었다. 


반년이 채 안 돼 과부하가 와버렸다. 통역이 너무 좋아서 시작했는데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통역에 치여 사니 번아웃이 올 것 같았다. 특히 매월 3주차가 되면 마음이 무거웠다. 금요일에 CTO전략실 월례회의가 바로 3시간이나 계속되는 바로 그 회의였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천재지변을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통역사가 되고 싶었는데 통역에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날은 집에 가서 혼자 소맥을 마셨다. 점점 주량이 늘어갔다. 


대책이 필요했다. 과도하게 일이 몰리는 통번역 의뢰 체계와 통역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이라 업무 체계나 분업 체계가 잘 잡혀 있었지만 통번역 영역은 아직 시작 단계였다. 내 전임자가 이 조직의 첫 통역사였고, 통역에 대해 업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면 당사자인 내가 할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한 명 더 뽑자고 하고 싶었으나 그것만큼은 통과될 리 만무했다.    

  

직속상관인 차장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이런 저런 사정을 말씀 드리니 의아하단 표정을 하셨다. “얼마나 일이 많길래? 업무일지라도 써봐.”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3주간, 기본적인 통번역 의뢰는 물론, 메신저로 오는 번역 의뢰 한 토막, 지나가다 참새 방앗간으로 들리는 일본어 관심자들의 ‘함상~’ 질문도 한 토막 빼지 않고 깨알같이 썼고, 매일 17시에 메일을 보냈다. 


3주쯤 지난 어느 날 업무일지 송부 버튼을 누르고 몇 분 후, 전화벨이 울렸다. 차장님이었다. 


“일이 많네~ 그냥 니 맘대로 해. 바쁜데 일지도 이제 그만 써~”      


먹혔다! 신기술을 도입하는 곳이라 그런지 우리 조직은 오픈마인드가 있었고 어느 정도 유연했다. 말투는 투박하지만, 아무리 부하직원이라도 근거를 대고 건의하면 조율해주는 합리적인 조직이었다. 알아서 하라는 말도 감사했다. 전적으로 신뢰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차장님이 부장님이 되신 이듬해에는 부장님과 상의해서 통번역 외에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는 빼거나 다른 부서로 이관하기로 했다. 어떤 업무라도 통번역과 겹치면 통번역을 우선시하기로 순서를 정했다. 예를 들면 팀원들끼리 아침 10분-15분을 활용해서 각자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는 조례 시간이 있었는데, 임원 외 전 사원이 필참이지만 나는 통역 준비를 위해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했다. 월 1회 센싱이라는 독서 토론 발표회에도 열외됐다. 기타 소소한 행정 업무나 지원 업무도 모두 없앴다. 


언어 문제 때문에 가끔 외국인 고문님의 어학 수업이나 주택 관리 같은 부분도 연락을 대신 해드리곤 했는데, 아예 총무팀에서 맡아서 하기로 업무를 이관했다. 출장 전 선물 준비 같은 업무도 모두 없어졌다. 인사팀도 적극적으로 서포트해주었다. 타 부서로부터 통역, 번역, 감수 요청이 늘어나면서 업무 시간 중 많은 시간을 외부로 차출되어 자리를 비워야 했던 것도 설득에 도움이 되었다. 회사 차원에서 통번역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다니 감사했다.      


겨울 무렵부터 통역은 자가 판단 휴식제, 번역은 마감일 공개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자가판단 휴식제는 내가 통역하다가 알아서 휴식하는 방식이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한 명 더 통역사를 뽑고, 학교에서 제시하는 시스템대로 15분씩 교대를 하는 것이지만 당장은 언감생심이었다. 차선책으로 타협을 했다. 장시간 회의는 내용 부하를 고려해서 요약해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매일 있는 간부 회의부터 시도해 보았다. 통역을 하다가 집중력이 줄어들 때쯤 ‘지금부터 10분 쉬겠습니다’ 이렇게 질러 버렸다. 처음에는 수석님, 책임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함상이 이제 회사를 다니기 싫은가 보다" 


농담 한 소리씩은 했지만 큰 잡음 없이 수용해주셨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간부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바톤 터치를 하기도 했다. 점심은 위장 건강을 위해 따로 먹기로 했다. 석식이 있을 때는 따로 미리 저녁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점차 조금씩 큰 회의에 가서도 시도해봤다. 감사하게도 이미 경험해본 분들이 이번엔 내 대변인으로 나서주시는 게 아닌가. “동시통역이 원래 15분씩 교대를 해야 할 정도로 뇌 과부하가 크다 하네요” 이러면 상무님이 “흠흠, 기계도 오래 돌리면 고장 나는데, 인간인데 쉬어줘야지” 북치고 장구치고 주거니 받거니...하면서 훈훈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더 큰 회의에 가서는 상무님이 부사장님께 ‘동시통역이라는 게~’하며 또 홍보대사를 자처해주셨다. 어느새 외부 회의에 가서는 ‘우리 통역사 쉬어야 하니까, 몇 시까지 하고 쉽시다’까지 확대되었다.      


번역은 여러 부서에서 산발적으로 오는 의뢰를 엑셀로 취합해서 의뢰처, 담당자, 예상 납기를 기재해 유관부서에 전체 공유를 했다. 만약 ‘우리 먼저!’를 외치는 부서가 있다면 목록에 있는 담당자끼리 일정을 조율하도록 요청했다. 이제 더 이상 몸이 하나뿐이라 미안해 할 필요도, 일은 일대로 하고 아쉬운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어졌다. 서로 존중하고 조율하면서 쾌적하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문제를 가시화하고 공론화해서 소통하고 조율하면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의견과 대안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된다는 소통의 방법을 배웠다.  

   

얻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회사는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한 새내기 통역사에게 돈 주고도 갈 수 없는 소중한 배움의 장이었다. 회사 대 회사 간의 대규모 회의부터 현업 실무진의 소규모 회의, 출장과 석식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직에서 있을 법한 여러 회의의 형태와 의사소통 체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였다면 경력 1-2년차에 경험하기 어려운 탑 교류회 통역도 해볼 수 있었다. 타 기업과 회사 대 회사 기술교류회가 많아서 굵직한 일본 기업의 회장단도 만나볼 수 있었다. 회로, 기구, 소프트웨어 같은 기본 요소부터 로봇,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 가전, 각종 분야의 원천기술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프리랜서로 나와서 통역할 때 기술 기계를 포함해 모든 공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큰 기반이 되었다. 


다양한 신기술도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은 구현이 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기술도 상용화되기 한참 전인 이미 2006년에 회사에서 다룰 만큼 신기술의 최전선을 엿볼 수 있었다. 번역은 ppt 100페이지쯤 하루만에 할 수 있는 근육이 붙었다. 충분한 훈련을, 심지어 분야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할 수 있던 귀한 시간이었다. 


2년 반 조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삼성전자에서의 생활은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시야를 넓혀 주었다. 통대 동기 언니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회사 짬밥이 내게도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러 지금도 감사하게 통역으로 삼성전자와 연이 닿는 일이 있다. 진행자로 함께 했을 때는 감회가 또 새로웠다. 삼성 파운드리 포럼 일본 행사 사회자로 무대에 설 때는 신기하게도 한색의 대명사인 파란색으로 가득한 행사장에서 따뜻함과 아늑함을 느꼈다. 무대 위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인사를 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사회를 맡은 삼성전자 출신, 한일국제회의통역사 함채원입니다.” 


삼성전자 출신, 짧은 한 마디지만 짧지 않은 나의 첫 사회생활 좌충우돌 역사가 담겨 있다. 사회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내 기반을 든든하게 다져준 회사와 동료들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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