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
자정 무렵,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버스에서 잠시 멍청한 생각에 빠졌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두 정거장이나 지나쳐버린 후였지.
집까지 걷기에는 다소 멀고
택시를 타기에는 돈이 아쉬운 거리
그래서 반대편 정류장에서
집 앞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어.
9분 후에 온다던 버스는
15분이 지나서야 도착했고,
우리 집 앞으로 바로 갈 거라 믿었건만
동네 이 곳 저 곳을 온통 돌아다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한다는 것을
버스를 타고서야 알았지.
그래서 나는 버스비를 내고도
금방 다시 내려 꽤 긴 시간을 걸어왔어.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 위에서 나는
한심한 생각에 빠져서 정류장을 지나친,
버스를 타기 전 노선을 검색하지 않았던,
버스비를 지불하고도 미련하게 집까지 걸어온
나 스스로를 조금 많이 미워했었어.
너에게도 혹시 그런 날이 있니?
네가 했던 사소한 실수들과
네 어리숙한 선택의 결과들 때문에
네가 너를 많이 원망한 날 말이야.
가로등빛도 닿지 않는
어둡고 쓸쓸한 길을 걸으며
난 나를 미워하면서
멀리 있는 너를 떠올렸어.
너에게도 이런 서글픈 날이 있었겠지
그 날의 너도 지금의 나처럼
참 많이 외로웠겠지.
그리고 다짐했단다.
언젠가 네가 너의 곁에
내 자리를 허락한다면
네가 너를 많이 미워하는 날에
너를 더 많이 사랑해주는 내가 되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