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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Feb 20. 2021

떡볶이가 좋아졌다

하나의 시점


'대체 왜 떡볶이 같은 걸 돈 주고 사 먹는 거지?'

어릴 적 나는 머릿속에 이런 의문을 품었다. 분식집에 둘러앉아 시뻘건 양념을 뒤집어쓴 떡볶이를 오만상을 쓰고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먹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돈 주고 순대나 튀김을 더 사 먹지. 매운 걸 간신히 참아가며 꾸역꾸역 먹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참.

그렇다고 해서 떡볶이가 죽을 만큼 싫었다거나 매운 음식을 아예 못 먹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냥 떡볶이는 사 먹기가 싫었다. 괜히 아까웠다. 어쩌다 가끔 엄마가 순대와 김말이, 어묵과 함께 떡볶이를 사 오면 그럴 때 한두 젓가락 깨작댈 뿐이었다.

'맛은 없는데 맵기는 엄청 맵고 그냥 빨갛기만 한 떡이 뭐가 맛있다고'

얼마 전까지도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에 갇혀 있었던 나는 최근 들어 달라지기 시작했다. 떡볶이가 좋아진 것이다. 급격한 변화가 스스로도 놀라울 지경이다. 나이가 들입맛이 변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그러나 나의 경우 단지 입맛의 변화만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내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내는 열렬한 떡볶이 마니아다. 우리가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는 내게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날 나는 스물다섯에 난생처음 내 돈을 주고 떡볶이를 사 먹었다. 그 떡볶이가 바로 엽떡인데,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별로였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한 사이라 입맛이 까다롭다는 이미지를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내는 나더러 고무도 씹어먹을 것 같다고 할 만큼 평소에 나는 뭐든 잘 먹는 사람이다.

아무튼 이후에도 우리는 종종 떡볶이를 사 먹었지만 내 후기는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게 도대체 뭐가 맛있다고 먹는 걸까? 완전 별론데. 딱 이 정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 건 작년부터다. 어느 날 저녁 아내가 갑자기 떡볶이가 먹고 싶다길래 실로 오래간만에 엽떡을 포장해 와서 먹었다. 별 기대 없이 먹은 떡볶이는 쫄깃쫄깃한 식감에 매콤하면서도 달짝지근했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국물도 끝내줬다.

"어? 맛있다? 아니, 너무 맛있는데!"

순간 나는 아르키메데스로 빙의해 유레카를 외칠 뻔했다. 그런 나를 보고 떡볶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거는 듯했다.

'네가 알던 내가 아냐'

그때부터 탄력을 받은 나는 아내와 함께 엽떡은 물론 청년다방, 응떡, 신전, 배떡 등의 체인점들과 동네 떡볶이집들까지 섭렵해 나갔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진짜 내 입맛이 하루아침에 확 바뀌어버린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결정적으로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와 몇 년 동안 같이 밥 해 먹고 심심하면 함께 먹방도 보면서, 잠이 안 오는 밤에는 침대에 누워 음식 얘기로 떠들다 보니 입맛이 비슷해진 것 같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입맛까지 비슷해질 줄은 몰랐다.

떡볶이는 이제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이 되었다. 가끔 배달 음식이 당기면 떡볶이 전문점 이곳저곳을 검색해 시켜먹는다. 예전에는 정말 별로였다고 생각한 엽떡이 요즘따라 왜 이렇게 맛있나 모르겠다. 아내 덕분에 흥미진진한 나의 떡볶이집 도장 깨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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