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철현 Feb 23. 2021

안아줘

하나의 시점


일 밤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아내는 작은 입술을 내 귀에 대고 "허그 미" 하고 속삭인다. 그러고는 돌아눕는데, 그 말인즉슨 백허그를 해달라는 소리다. 나는 군말 없이 다가가 아내를 꼭 끌어안는다.

조금 뒤 이번에는 아내가 몸을 돌려 나를 안아준다. 그러면 나는 마치 엄마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 그 품속에 고대로 파묻힌다. 나보다 자그마치 20센티나 작은 아내의 품이 이때만큼은 넓고 잔잔한 바다처럼 내 온몸을 포근히 감싼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회사 업무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던 아내가 결국 참다못해 내 앞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안쓰러운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가슴이 무거웠다.

아내가 괴롭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서 운다면 나도 똑같이 괴롭고 슬프고 힘들며 덩달아서 눈물이 난다. 서로가 한마음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덜 괴롭고 덜 슬프고 덜 화날까. 나아가서는 상처가 아물고 덤덤해질 수 있도록 연구한다. 그때는 만사 제쳐두고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혹여나, 마음만 앞서서 아내의 아픔에 대해 단면적으로만 보고 판단한다면 아내는 되레 마음을 닫고 뒷걸음질 칠 뿐이다.

위로랍시고 어설프게 "괜찮아, 힘내"라고 영혼 없이 떠든다거나, 무턱대고 "뚝, 그쳐.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래" 하면서 타이르면 안 된다. 또는 어쭙잖게 너의 아픔에 공감한다면서 나도 힘들고 모두가 힘든 세상이라는 둥의 공감능력이 결여된 말들을 내뱉었다간 크게 역효과가 나기 십상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봤을 때, 상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최고의 위로는 먼저 말없이 안아주는 것이다. 아내가 힘들고 괴로워할 때마다 나는 숱한 위로의 말과 응변을 해왔다. 그러나 등과 어깨를 토닥이며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는 게 가장 현명한 해결책이었다.

차분하게 기다린 뒤에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진정이 되면 그때 비로소 입을 열고 행동을 취해도 늦지 않다.

오늘 밤도 우리는 서로를 안아준다. 가끔은 내가 먼저 안아달라고 애원한다. 모진 풍랑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찢겼던 나를, 아내는 단단히 붙들고 일으켜 세운다. 작디작은 품속에서 그렇게 나는 치유되고 안식을 얻는다.

이전 06화 눈 내린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