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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Feb 14. 2021

눈 내린 밤

하나의 시점


얼마 전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안전 안내 문자가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대설주의보였다.

나와 아내는 눈이 온다는 말에 냉큼 거실 커튼을 걷어 젖혔다. 아닌 게 아니라 창밖에는 목화솜 같은 눈들이 잇따라 떨어지고 있었다. 집 앞의 거리도 제법 눈이 쌓여 설원으로 변모해 가는 중이었고.

그길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 나 할 것 없이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두꺼운 장갑을 끼고 털 달린 모자를 썼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는 눈밭에 서서 발을 구르고 머리 위로 양팔을 번쩍 들고 춤을 추었다. 금세 흰 눈을 뒤집어쓴 서로의 모습을 보고는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눈 내린 도로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량들을 보게 되었다. 이튿날 내게도 들이닥칠 빙판길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일이 아닌 오늘, 아니 순간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던 어릴 때는 달달한 솜사탕 같이 생긴 흰 눈이 마냥 좋았었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는 현실 서글펐다.

그렇게 씁쓸한 상념에 빠져들던 찰나, 훅 날아온 눈 뭉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내가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미처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또 한 번 공격을 감행했다.

퍽, 차가운 눈 뭉치가 내 왼쪽 어깨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아내는 또 웃음이 터졌고, 그걸 보고 나도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어깨를 누르던 내일의 걱정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내의 장난기 어린 행동은 다시금 나를 동심의 세계로 이끌었다. 내일 해도 될 걱정을 굳이 오늘로 끌고 와서 시름하던 나는 이내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눈사람도 만들었다. 내가 바지런히 눈을 굴려 몸통을 만들고 아내는 동글동글한 머리를 만들었다. 눈을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흰 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무척이나 설레던 눈 내리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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