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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May 18. 2021

서로가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

하나의 시점


얼마 전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 친구와는 여덟 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랐고, 알고 지낸 지 햇수로 벌써 25년이 넘었다. 워낙 오래된 사이라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얼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친구가 내게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아내를 대동하던 내가 어쩐 일로 아내를 두고 혼자 왔는지 궁금할 터였다.

아내는 일이 있어서 친정에 갔다고 얘기하자, 친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아직 미혼인 그 친구는 우리 부부를 보면 자신도 얼른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는 중간중간 나와 아내에 대해 얘기하면서 아내를 "제수씨"라는 호칭이 아닌 "소영 씨"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평소에 다른 친구들과 만날 때도 나는 그들이 제수씨가 아닌 아내의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랬기에 그 친구에게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는 점이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결혼했어도 친구들이 호칭보다는 소영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아. 그런데 대부분이 제수씨라고 하더라."
"제수씨는 아니지. 그건 손아랫사람을 부르는 호칭이잖아."

친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제수씨라는 호칭에 그런 뜻이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아내가 언제나 자기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랐을 뿐인데. 친구의 그 설명이 앞으로 친구들과의 호칭 정리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자신의 이름을 잃어간다. 집에서는 누구의 엄마 아빠가 되고, 회사에서는 주임, 대리, 과장이 되면서 자기의 이름보다는 위치에 걸맞은 호칭이나 직함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와 아내 사이에서 만큼은 계속 서로의 이름을 간직하고 싶다. 혹시나 나중에 가서 우리가 아이를 낳더라도 아내를 누구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아내의 이름으로 부르길 원한다. 누군가는 이름 하나 갖고 유난 떨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 만큼은 아내의 이름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이름 석자가 아닌, 내가 처음 느꼈던 설레는 그 감정들과 차츰 확신을 들게 했던 순간순간들.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되어 앞으로 함께할 오랜 시간을 보증하는 것이 아내의 이름이다. 언제 들어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평생을 듣고 싶은 아내의 이름이 내겐 너무나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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