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철현 Sep 23. 2022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

지금 이 시점



어젯밤 TV 앞에 앉아 한 교양 프로그램을 시청하는데 몇 해 전 아내와 둘이서 갔던 강화도가 여행지로 나왔다. 시간이 꽤 지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TV에서 장면 장면 스는 풍경들을 두 눈에 담으며 기억을 더듬어갔다. 그러다 문득 눈에 익은 장소들이 나올 때면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동안 나와 아내는 연신 감탄사와 콧바람을 섞어가며 기억 저편에 넣어두었던 소중한 억들을 떠올렸다.


내친김에 핸드폰 속 갤러리를 뒤져서 여행 당시에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낸 우리는 더욱 선명해진 그날의 기억들을 추억했다. 소소한 즐거움이,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는 순간이었다. 장소가 어디고 누구와 함께였든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지나가버린 여행이다면,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날지라도 그처럼 온전히 그때의 감정을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 이런 생각 들었다.

'단지 여행이 아니더라도 사진이 갖는 의미는 우리 인생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구나.'

지금 내 핸드폰에 저장된 수천 장의 사진들만 봐도 그렇다. 아내와 연애 때부터 함께 했던 많은 추억과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가 사귄 지 백 일째 되던 날과 1주년 여행과 그 당시 깜짝으로 선물한 커플링, 그리고 2주년 때 아내가 날 위해 만들어주었던 아기자기한 영상과 함께 보낸 감동적인 메시지 내용도 캡처한 상태 그대로 있다.

어디 그뿐일까. 살면서 처음 가 본 (이 역시 아내와 함께였다.) 부산 여행과 우리가 만나고 5년 반이 걸린 끝에 하게 된 프러포즈의 순간들과 우리의 신혼 여행지인 호주와 지난번 여름휴가 때 떠났던 베트남 나트랑의 모습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가 함께한 일상의 모습들도 많이 담겨있는데, 특별한 날이나 여행지에서의 사진들보다 어쩌면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 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쯤 해서 미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결국 우리가 변함없이 함께하였기에 수많은 사진이 남는 게 되는 거겠지'

만일 중간에 우리가 헤어졌다면 그까짓 사진들이 뭐가 중요할까. 모든 게 그저 차고 넘치는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이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때의 우리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와 앞으로의 우리가 언제나처럼 사랑하리란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온 길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나와 아내가 함께 걸어갈 수많은 길이 우리의 사진 속 배경이 되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전 26화 우리지만 때론 우리가 아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