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도 취업이 되지 않는 시대

AI의 등장으로 자격증 호소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 듯 싶다.

by 장철원

인터넷 상에서 쓰이는 표현 중에 "ㅇㅇ 호소인"이나 "패션 ㅇㅇ"라는 말이 있다. "ㅇㅇ 호소인"은 말그대로 자신의 억울함이나 요구를 호소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인터넷에서는 스스로 그렇다고 어필만하지 실제 그런지는 별개인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패션 ㅇㅇ"은 겉모습만 그럴듯 하고 실제 내용은 비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두 단어 모두 비아냥이나 조롱 섞인 표현이며, 인터넷 특유의 냉소가 잘 드러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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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AI 시대가 되면서 우리 생활은 한 달만 지나도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요새 가장 큰 화두는 AI로 인해 직업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얼마전 공중파에서 나온 다큐멘터리는 전문직 자격증을 딴 사람들조차 AI에 밀려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AI시대가 되면서 모두들 직업이 사라진다고 공포에 떨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개발자의 경우, 실력이 뛰어난 개발자들도 많지만, 스스로를 개발자라고 호소하는 패션 개발자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대단한 개발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상 하는 일은 원리를 잘 몰라도 검색 결과를 복사 붙여넣기만으로 할 수 있는 단순 코드 작업인 경우도 많다. 회사는 ROI 관점에서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굳이 그런 패션 개발자를 뽑을 이유는 없으니 AI 등장이 반갑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AI의 등장은 개발자를 대체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실력없는 개발자들을 숨겨주던 거품을 제거하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보여주기 식으로 단순히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코드도 먹혔는데 지금은 그정도 코드는 AI가 더 싸고 빠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이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바로 티가 나고 단순히 돌아가는 코드를 짜는게 다가 아니라 문제 정의, 코드 구조 설계, 디버깅 능력이 핵심이 된 것이다. 따라서 AI 등장은 패션 개발자 입장에서는 지옥이고, 실력있는 개발자에게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주니어 개발자가 패션 개발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단순 업무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우려하지 않으면서 이미 전문가인척, 시장가치보다 자기 평가가 높은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AI 등장은 허상으로 유지되던 역할을 벗겨내는 정화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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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다큐멘터리에서는 회계사도 다루었는데, 회계사는 개발자보다도 더 심하게 느껴졌다. 그 동안 자격증은 확실해보이고, CPA 같은 전문 자격증이 미래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여서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사실 자격증은 최소한의 지식이 있다는 증명이지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꼭 일을 잘한다는 증명은 되지 못했다. 물론 예전에는 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려웠고, 실무가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최소한 현업에서 쓸만하다는 의미를 뜻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AI가 워낙 일을 잘하니까 방송에서 소개된 일부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실수를 많이하는 신입 회계사들을 채용하는 것보다 기존 회계사들이 AI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일을 한다고 방송에서는 말했다. 이제는 소위 전문직이라 불리는 자격증만 따서 자격증으로 호소하는 시대는 안통한다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회계사 자격증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 회계 업무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자격증은 입장권이며, AI는 신입들의 경쟁자가 아닌 자신의 실력을 높여주는 도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교육환경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예전에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궁금한게 있어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박사과정에 입학할때는 드디어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들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기억이 있지만, 결국 그들도 내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답도 안나오는 질문들을 혼자서 끝없이 고민했다.


이세돌.png 바둑계에서도 초보자와 경력자의 실력차이가 심화된다?


그런면에서 요즘은 너무 좋다고 생각한다. 질문이 있다면 AI한테 물어보면 대부분 정확히 알려주는 이런 환경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지식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선생님이 없는 초보자, 집안이 가난해서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AI가 희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초보자의 실력은 AI 등장 전이나 지금이나 체감상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AI 등장 이전에 잘했던 사람들이 AI라는 날개를 달고 더 높이 날아가는 느낌이다. 어째서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 것일까? 개발자 뿐만이 아니라 바둑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도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아졌는데, 초보자와 실력자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나는 그 원인으로 먼저 질문의 퀄리티 차이를 뽑고 싶다. AI는 답을 생성해주지 질문을 만들어주진 않는다. 따라서 기존에 잘하던 사람들은 AI 결과를 보고도 왜 결과가 이렇게 나왔는지, 이게 맞는건지에 대한 디테일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반면, 초보자의 경우, 대부분 무엇을 물어봐야할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고, 질문을 하더라도 이거 해줘라는 식으로 애매한 질문을 하니 AI도 애매한 답만 주게 된다. 따라서 똑같은 AI를 사용해도 흡수량이 전혀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AI는 틀린 소리를 할 때도 있는데, 초보자는 그 답변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을 하지 못하며, AI에게 질문한 후 개별 지식의 조각들만 모으는데, 개별 지식을 연결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초보자는 AI가 만들어주는 결과에 너무 빨리 만족해버리며 자신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코드가 돌아가기만 하면 만족하고 AI의 설명이 그럴듯하면 자신이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초보자가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실패도 하지 않고 고민하는 시간도 없어짐에 따라 스스로의 실력 상승 구간을 자신도 모르게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AI는 기존 사용자의 능력에 곱셈 법칙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AI가 기존 능력의 5배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라고 가정하면, 기존 능력이 10이었던 사람은 10x5로 총 50만큼의 성과를 보여준다면 기존 능력이 0.1이었던 사람은 0.1x5의 결과인 0.5만큼의 성과를 보여준다. 회계사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험 문제만 외울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지식을 실무 능력과 연결 시켜야한다. 단순 암기 대신 회계처리를 왜 이렇게 하는지 원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요청하면 AI가 사례까지 들어주니 가상의 실무환경을 만들어 트레이닝 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변화는 초보 AI 개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라이브러리 호출하는 방법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결과가 잘못 나왔을때 어디를 의심해야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 AI를 단순히 정답을 만들어주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고를 확장시켜주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은 자격증이나 직함에 호소하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든 결과를 이해하고 의심하며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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