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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ldon Nov 25. 2022

광고인이 바라본 소개팅

조금 덜 일상 같은 일상 이야기

이야기의 중심인 부산의 어느 카페.


부산의 어느 카페. 나무 인테리어 중심에 유럽풍 명화가 듬성듬성 걸려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란빛 조명에 고급스러운 클래식 피아노가 흐르고 있어, 독서 하기에 딱 적당하다. 나는 카페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이윽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카페에 들어와 메뉴를 확인한다.


"일행이 오면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손님."


여성은 카페 구석에 위치한 편안한 소파를 정해 앉는다. 고풍스러운 테이블 위에 그보다 더 현대적인 조명이 자리를 밝히고 있다. 머지않아, 덩치가 크고 안경을 낀 남성이 회색 정장을 입고 카페에 들어선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성은 들어온 남성을 향해 목례를 한다. 예의가 바른 여성은 적극적으로 남성을 환대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여기 지금 1+1 행사 중이라, 제가 주문할게요."

"아니에요. 제가 주문할게요."


남성과 여성은 함께 카페 카운터로 향하고 주문을 한다. 남성이 카드를 내밀며, 커피를 주문한다. 이제, 여자는 마스크를 벗는다. 미인이다. 새하얗고 맑은 피부에 이목구비라 뚜렷하다. 화장을 깨끗하게 했으며,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웨이브를 했다. 키는 165 안팎 정도 되는 것 같고, 발음이 또렷하고 자기주장이 확실해 보인다. 소개팅이라 그런지, 확실히 외모에 힘을 줬다. 반면에, 남자는 살이 많이 찌고 안경을 꼈다. 기본적으로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자기 관리가 안되어 보인다. 키는 대략 170 정도 되는 것 같고, 낡은 검은색 코트가 안쓰럽다. 그래도 소개팅이라고, 유니클로에 가서 회색 목티를 사서 입은 것 같다. 자리에 앉아서도 코트를 벗지 않는 그가 안타깝다. 단연컨대, 여자는 남자에게 과분해 보인다.


그들이 앉은 카페 구석에 위치한 소개팅장.


그들은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고 오시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묻는다. 여성은 남자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앉으며, 온갖 종류의 다양한 질문들을 건넨다. 넷플릭스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즘 날씨는 어떤지, 카페의 분위기는 어떤지, 남자의 취미는 뭔지 등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남자는 여자의 질문에 낮은 텐션으로 간결하게 대답한다. 엿듣고 있는 내가 안타깝다. 내 친구라면, "마! 정신 안 차리나? 뭐하노?" 라고 외치고, 밖에 데리고 나가서 교육을 하고 싶을 정도다. 남자는 짧은 대답을 할 뿐, 절대로 되묻지 않는다. 나는 남자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차고 싶지만 제 3자라서 참기로 한다.


고요한 적막함이 클래식 음악을 한껏 북돋는다. 침묵은 소개팅에서 최고의 적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정신을 차렸는지... 남성이 전통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운을 띄운다.


"대학교 어디 나오셨죠?"

"부산대요."

"혹시 무슨 과 나오셨어요?"

"서양화요."

"어! 저 아는 동생 하나 있는데."

"이름이 뭐예요?

"김 아무개요. 김해에 사는 동생인데 아르바이트하다가 만났거든요. 제가 사실,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었거든요."

"음~ 음~"


남성은 정말이지 창의적인 일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는 일도 철강업. '스댕'을 무게당 파는 일을 한다는 그는 여성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는 듯싶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적막함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독서는 잊어버린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다. 여성은 계속해서 커피를 휘젓는다.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적막함을 깬다. 여성이 무안했는지, 남성에게 어느 대학에 나왔는지 되묻는다.


"대학은 어디 나오셨어요?"

"신라대요."

"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여성은 부산대. 남성은 신라대. 요즘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도, 여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대학교는 아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남성이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여성의 칭찬으로 바꾼다. 나는 너무 늦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남자가 측은해지기 시작한다.


"서양화면 창작의 고통이 대단하시겠어요~"

"네..."

"창작자들이 보통 외모가 뛰어나잖아요. 그래서 그러신가... 느낌이 그냥 '어, 약간 이 분...?' 이런 느낌이세요."

"음~"


여성은 다시 커피를 휘젓는다. 나는 카페 종업원이 얼음을 충분히 줬기를 바랄 뿐이다. 남성은 어떻게 해서든 칭찬을 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듯싶다. 남자는 온몸을 여성 쪽으로 기울이고 앉기 시작했다. 여자는 온몸을 뒤로 기울이고 앉으며 연신 커피잔을 들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한다. 낯을 많이 가리지 않는다는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 대화를 이어가 보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낯을 안 가리면, 처음에 대체 왜 그렇게 무심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MBTI는 뭐예요? F는 어떤 스타일이고... N은 어떤 스타일이고... (노잼이라 생략)"

"저는 I 성향이라 내성적인 편이에요."

"그렇군요."


여자는 고개를 45도로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재밌다! 이쯤이면, 여자가 할 줄 아는 말이 "음~" 밖에 없는 거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나는 그런 여자의 바디 랭귀지가 너무 또렷하게 보여서 남자가 더 안쓰러워 보였다. 여자는 답이 안 나온다고 판단했는지, 남자를 향해 강속구를 던진다.


"저는 답답한 거 싫어해요. 외모는 잘 안 보고요. 저는 글 잘 쓰는 사람들 좋아해요."

"그렇죠, 그렇죠."


남자는 딱 봐도, 글이랑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마도, 공대를 나온 남자는 자기가 예술성이 없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그렇죠, 그렇죠"를 연발한다. 이제는 여자에게서 "음~" 또한 듣기 어려워진다. 나는 저들이 무슨 목적으로 커피를 마시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남자가 '기부금'을 내고 여자를 초청한 건 아닌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대화가 끝날지 궁금해진다. 답답했는지, 여자가 질문을 건넨다.


"넥플릭스 뭐 좋아하세요?"

"IS 재밌게 봤었는데...(개노잼이라 생략)"


여자의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하다. 나는 남자가 커피라도 마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마지막 질문인 것 같은 남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티키타카가 잘 맞아야 해요. 그게 사실 어렵더라고요. 대화가 많아야 좋은데... 제가 I 성향이라서 그런 걸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아요."


남자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아, 적막함이 감돈다. 이제는 클래식 피아노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생각이 들며, 카페 주인에게 감사하다. 카페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웠나?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를 향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책임감도 있어야 하고. 존중. 신뢰. 존경심이 있어야... 직업적인 존중이라거나... 예의.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중심이 있어야 예의도 있는 거고... 그런 거니까... 그래서, 그런 됨됨이가 있는 사람이..."


적막. 남자는 자리를 고쳐 앉고 여자는 대화를 이어가려고 말을 잇는다.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 운동도 자주 하는 게 좋은데... 제가 아트를 좋아하다 보니까, 취미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게 비슷하면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남자는 특별한 리액션이 없다. 여자 또한 특별한 리액션이 없다. 두 사람의 30분은 가식이라도, 웃음이 하나 없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끝을 향해 가는 듯싶다.


이제, 여자는 화가 난 것 같다. 여자가 핸드백에 있는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남자 또한 눈치를 채고, 마스크를 찾기 시작한다. 때마침, 아줌마 부대가 카페에 들어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라, 더 이상 이야기를 엿듣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들의 소개팅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리를 일어서며 던지는 남자의 마지막 멘트와 여자의 대답이 제일 재밌었다.


"저녁 드셨어요?"

"점심에 사과를 많이 먹어서..."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했던 커피를 카운터에 반납하고 카페를 나선다.


문제는 점심에 많이 먹은 사과일까? 아니면, 그냥 둘이 안 맞았던 걸까? 분명한 건, 소개팅은 어렵다는 거다. 만남이 이렇게 힘들다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걸까? 광고인이 한국의 카페에서 바라본 일상은 광고보다 재미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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