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동네의 유니콘이 되어 보았다.
First Trick or treat ever 151031
카페 Legacy 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틸다가 갑자기 언제 Trick or Treat 을 가고 싶냐고 물었다. 드디어 갈 기회가 주어지다니!!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무척 가보고 싶다고 했다. 같은 반 친구 제스가 우리를 초대해서 같이 사탕을 받으러 제스가 사는 동네로 가기로 했다. 틸다는 영화 <아담스 패밀리> 라는 가족 호러 영화 시리즈의 수요일의 아담스로 변신했고 나는 유니콘을 타고 있는 발레리나였다. 맘에 쏙드는 의상이었다. 할로윈 당일 느지막히 제스 집으로 향했다. 할로윈을 기념하기 딱 좋은 우중충한 날씨였다. 제스의 집은 영화에서만 보던 대저택이었다. 내가 살면서 본 가장 큰 집이었다. 집구조 자체가 정말 신기했다. 보이는 방문이 군데군데 많았다. 거실에 들어서니 멋진 숲이 보였다. 수영장도 평범한 수영장이 아닌 발리의 울창한 숲 속 오아시스 같은 수영장 같았다.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은 정원이 아니라 정글같았다. 무성한 나무들이 우거졌다. 마당 한 쪽에는 세 마리나 되는 당나귀들도 보였다. 보면 볼수록 매력있는 집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병아리콩이 담긴 타코를 저녁으로 만들어 먹고 본격적인 사탕 사냥을 하러 집을 나섰다. 제스는 인디언 소녀로 분장했다.
첫 번째로 문을 두드리는 집에서는 키 큰 아저씨가 나오셨다. "Trick or Treat!" 이라고 외치는 우리를 보고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시고는 사탕 한가득을 담아주셨다. 우리가 사탕 사냥을 나설 제스의 이웃 동네는 모두 대저택들에 살고 있는 부자들이었다. 그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서울의 평창동 느낌. 사탕을 후하게 받을 수 있었지만 굽이진 언덕들을 오를 뿐만 아니라 대문에서 실제로 집 주인분들을 만나는 현관문까지 꽤 오래 걸어야했다. 특히, 나는 유니콘 의상을 웨딩 드레스 마냥 계속 정리하면서 가파른 곳을 오르고 내려가야했다.이제 한 집을 방문했는데 유니콘과 함께 다니니까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지치기는 일렀다. 호박 바구니를 더 채우자는 불굴의 의지로 다다른 두 번째 집의 문을 두드릴때는 사탕을 달라는 Trick or Treat 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답이 없는 두번째 집. 힘들게 왔는데 사람들의 나오지 않을 때는 우리 모두 투덜거리며 오던 길을 빈 손으로 돌아갔다. 사탕도 못받고 다시 올라온 그 언덕을 타고 내려와야했다. 그 동네의 집들이 크고 현관문까지 가는 길이 길었기 때문에 그 동네의 사탕 사냥은 2배로 힘이 든다는 사실을, 오늘은 토요일 밤이라서 대부분의 집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집이 너무 너무 넓어서 초인종과 노크 소리를 듣고 현관문까지 나오는데 우리가 그냥 가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을 열어주시는 집 주인분들 뒤로 조금씩 보였던 그들의 집은 어마어마했다. 사탕 사냥보다 집 구경이 더 하고 싶을 정도였다. 호주에서는 뷰가 좋은 집이 비싸다고 한다. 이 동네의 뷰는 강원도 태백산맥 협곡 뷰 저리가라하는
뷰를 자랑했고 인테리어와 높은 천장의 회오리 계단과 샹들리에 인테리어들은 상상도 못한 것들이었다. 올 블랙 스포츠카를 주차해둔 주인의 저택에서는 한쪽 벽 전체가 물고기 수조로 도배되어있기도 했다.
또 다른 집은 노크를 했는데도 인기척이 없어 아무도 안 계시는 줄 알고 발걸음을 돌렸는데 한참 뒤에 현관문이 열렸다. 가는 우리를 붙잡고 기다리라고 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휠체어를 돌려 우리에게 과자를 챙겨주시는 친절한 할머니분도 만났다. 마당에서 차 세차를 하고 있던 어떤 모녀는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이 길을 따라 내려가도 비어있는 집 밖에 없을텐데~"하시면서 우리를 멈춰 세우시더니 사탕을 듬뿍 담아주셨다. 감사하게 받고는 다른 길을 따라 걷다보니 파티가 한창 열리고 있었던 집을 만났다. 집 주인 아저씨는 "사탕 하나는 너꺼고 다른 하나는 horsie 이 유니콘꺼야." 라고 하시며 롤리팝 두개를 건네 주셨다. 돌아 오던 길에 만났던 중국인 가족들은 다른 호주 사탕들과는 다른 금색의 한자가 적힌 빨간 포장지의 누룽지 사탕같은 중국 사탕을 통크게 한 봉지채 주셨다. 몇몇 집의 집 주인분들은 미처 준비해둔 사탕이 없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Oh, sorry. I dont have any lollies. Sorry!"라고 하신 분들도 있었다. 어둑어둑 해질 즈음 마지막으로 들린 집을 정했다. 흰색 가운을 걸치신 아저씨가 나오셨는데 Trick or Treat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이미 사탕 바구니를 들고 계셨다. "늦은 시간에 온 걸 보니, 우리 집이 마지막인가?" 하시며 들고 계신 사탕을 몽땅 주셨다! 어두워졌는데 조심히 돌아가라고 하시면서 다시 돌아가는 길쭉한 주차장 길을 밝히는 조명등을 켜주셨다. 가득 찬 호박 바구니와 함께 마음도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제스네 집으로 돌아와 받은 사탕을 한데 쏟아 부어 셋이서 나눠 가졌다. 틸다네 집 근처도 Trick or Treat 을 돌고 싶었지만 유니콘을 끌고 돌아 다니느라 힘이 다 빠졌다. 오싹한 기운은 커녕 오고 가는 할로윈 사탕과 과자들로부터 호주 사람들을 따뜻한 정을 진하게 느꼈다. 나의 첫 할로윈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아직까지 호주에서의 할로윈이 처음이자 마지막 할로윈을 기념한 날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