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동안 호주의 대자연 만끽하기
DAY #1
그램피언스 국립공원으로 로드 트립을 떠나는 오늘도 틸다네 가족과 나는 운동을 빼먹을 수 없었다.
아침 요가 클래스를 마친 우리는 어김없이 건강한 맛이 나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고급 유기농 슈퍼마켓 <Leo>에서 간단한 아침과 달리는 차에서 먹을 간식을 서둘러 구입한 후 차에 탔다. 이번에도 틸다가 운전대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갖고 있었던 호주의 시골길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양, 젖소, 말,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알파카들까지,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더 신기했던 건 달리는 차를 둘러싼 광대한 유채꽃밭이었다. 몇십 킬로미터를 달릴 동안 샛노란 유채꽃들은 황홀하게 반짝였다. 누군가 실수로 형광 노랑 페인트통 수백만 개를 엎질러 놓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 늘 보았던 푸른 산들의 풍경만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는 고속도로 양쪽으로 펼쳐지는 노란 풍경이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즈음, 우리는 Ballarat 킹 베이커리에서 미트 파이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출발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떡소떡을 사 먹는 시간과 같았다. 화장실 때문에 잠깐 멈춘 또 다른 휴게소에서는 합성착향료와 청색 100호가 들어간 것 같은 인공적인 맛이 나는 새파란 블루베리 밀크셰이크도 사 먹어야 제맛이었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자마자 '지금부터 리얼 야생 시작!'을 알리는 표시라도 하듯 캥거루 떼가 우리 차 앞을 겅중겅중 지나갔다. 진짜 호주에 와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말로만 듣던 그 광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니 그 여운이 참 오래간다. 국립공원을 들어온 뒤로 45분 정도 더 달려서 우리 숙소가 있는 Halls Gap이란 곳에 도착했다. 아늑한 통나무 집 뒤로 보이는 광활한 대자연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거대한 액자에 걸려있는 그림 같았다.
더 그림 같았던 건 캥거루 한 20마리 정도가 자유롭게 숙소 뒷마당에서 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여행 잡지 <호주 멜버른 편>을 보는 듯했다.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타운을 향해 20분 정도 걸었다. 가는 길 내내 줄지어 지어져 있던 삼각형 집들에 눈이 갔다. 텐트같이 생겼으면서도 튼튼한 지붕을 가지고 있는 ‘A Frame’ 하우스들이라고 핀바가 설명해주었다. 그런 집에 살아보고 싶었다. 우리는 Kookubara라는 모텔의 레스토랑에서 오징어 샐러드를 먹었다. 학교에서 좋아하는 선생님(틸다랑 난 좋아하는 선생님도 글로벌 시티즌 선생님 Mrs.King과 물리 선생님 Mr.Hamilton으로 같았다), 교복 규정, 즐겨보는 유튜브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나와 어둑해진 길을 다시 돌아갈 때는 캥거루들이 소리도 없이 내 옆에 우뚝 서있었을 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DAY #2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가사키 짬뽕밥을 뚝딱 해 먹었다. 아침 조깅을 하며 여행 방문자 센터를 들렀다. 관광 가이드 팸플릿도 챙기고 오는 길에 산에서 나온 잎이나 열매들로 만든 간식들도 사서 핫초코와 함께 잠을 깨웠다. 핀바, 틸다와 나는 차를 타고 REED 전망대로 향했다. ‘멜버른의 그랜드 캐니언’ 같은 곳이었다. 전망대에 도착한 우리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의 공기는 평화롭고 조용했다. 구름의 그림자가 하늘 아래 산맥들에 덮고 있는 장면은 담요를 덮고 있는 듯 포근했다. 틸다와 나는 살짝 망가진 펜스를 넘어 앞으로 더 튀어나온 절벽들의 큰 돌덩어리 끝으로 걸어가 보았다.
두 번째 목적지는 멕켄지 폭포였다. 틸다는 이번 방학 때 꼭 폭포가 있는 숲을 하이킹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바람이 멕켄지 폭포에서 이뤄졌다. 굵은 물줄기를 쏟아내는 멕켄지 폭포는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폭포 물줄기를 따라 나있는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웅장한 대자연의 풍경은 나의 걸음걸이를 더욱 당당하게 바꿔놓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국립공원에 2년 전 산 전체의 50%를 파괴시킨 대형화재(BUSH FIRE)가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하이킹을 하면서 아직도 탄 채로 남아있는 흔적들이 볼 수 있었다.
하이킹 중간중간 팀탐과 아이스크림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Zero 산맥으로 향했다. 거대한 돌산인 이번 목적지는 마치 화성에 있는 듯했다. 정상에 다다르니 달 표면의 크레이터 같기도 하고 공룡 발자국처럼 움푹 파인 큰 구멍도 보였다. 정상에서 마주한 대자연의 풍경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인공적이지 않은 풍경이었기에 저절로 공룡들이 지나가는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도 있었다.
한 참 걸어 올라온 높이의 이 돌산이 오랜 옛날에는 바다에 잠겨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내가 올라온 이 돌산이 오랜 세월 물과 바람이 깎은 예술 조각품 그 자체였다. 고개를 왼쪽으로 90도 꺾어 옆으로 바라볼 땐 잘생긴 미남의 옆태같이 생긴 산맥들이 보였다. 이집트 피라미드 같이 생긴 돌산들도 있었다.
핀바가 틸다에게 운전을 시켜보시는 것처럼 멜버른 도시보다 널찍하고 차가 없던 시골길에서는 내게도 운전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진짜 도로를 달려 본 역사적인 날이었다. 틸다가 먼저 제안을 해서 운전대를 잡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핀바는 어떤 마음으로 정말 운전대를 잡게 했던 걸까. 자전거 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는 그 느낌 자체가 짜릿했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처음 치고는 부드럽게 운전을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처음에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자동차 전체가 들썩였다. 곧 잘 커브를 돌고 부드럽게 멈출 줄 알았다. 운전할 때의 느낌은 정말 중독적이었다. 다시 Halls Gap으로 돌아가서 저녁으로 먹을 소시지와 소고기를 사고 캐빈으로 돌아왔다. 캥거루와 놀고 있을 동안 핀바가 준비하는 저녁이 다 되었다. 허겁지겁 맛있게 먹고는 핀바가 선택한 줄리아 로버츠 주연작 <Erin Brockavich>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봤다. 이층 침대 두 개가 놓여 있던 방이었지만 한 이 층 침대를 나눠 썼던 틸다와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마주 보고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DAY #3
우유를 따른 English Breakfast tea 한 잔으로 마지막 날을 시작했다. 아침 10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멜버른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운전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틸다가 운전할 때는 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국립공원의 숲에서 나오는 시원하고 신선한 피톤치드를 맘껏 들이마셨다. 사파리를 달리는 것 같았다. Allarat이라는 도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페리페리 치킨 샐러드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또 4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나는 한 층 더 진짜 Aussie 호주 사람에 가까워진 듯한 왠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 REAL AUSSIE TRIP IT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