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피소드 #3] 장군 출신 남편의 병원 수발
괴사성 폐렴으로 입원한 지 5일째 되었던 날
앞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야! 밥 나올 때 안 됐어?
야! 핸드폰 충전 좀 해놔
야! 물 좀 가져와!
야! 빨리 좀 해~
할아버지는 보호자인 할머니께
연이은 심부름을 시키시는 것 같았다.
"아유~ 알겠어요!!"
기침을 콜록콜록하시며
할머니는 묵묵히
할아버지가 시키는 수발을 들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실 때마다 병실은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싸움이라도 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병실이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신 틈에
그 옆자리에 계시는 간병사 분과
스몰 토크가 이어졌다.
"할아버지가 심부름 많이 시키셔서
힘드시겠어요~"
"아휴, 너무너무 힘들어요,
혼자 뭐 하나 안 해 그냥!
군인 출신이에요 저 양반이
그래서 다 해줘야 돼"
"어쩐지~ 아이고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하나하나 다 챙기시려면"
"저 양반이 군대에 있을 때부터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다 해줘 버릇해서 너무 힘들어..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저렇게 살아온 사람인데
자기가 뭘 잘못하는지도 몰라! 콜록콜록"
곧 할아버지께서 화장실에서 나오심과 동시에
다시 병실은 조용해졌다.
털컹털컹! 밥 차소리가 들렸다.
"가서 빨리 밥 받아와 밥 먹고
운동 가게"
"아이고 기다려요 좀!
밥을 갖다 주시는데, 왜 이래 정말"
할머니는 화가 나셨는지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순간 병실은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화내고
설마 때리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콩닥콩닥 심장이 뛰었다.
정적이 흘렀다...
'오잉? 화를 안 내시네?'
너무 다행이었다.
식사가 다 끝나고 나서 할아버지는
빨리 밖에 나가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야! 물 좀 가져와
야! 쓰레빠 어디 있어! 쓰레빠 가져와"
"잠깐만요! 지금 물 가지러 가잖아!"
"야! 쓰레빠는 어디 있어~~"
식사를 마치자마자,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또다시 심부름 폭탄을 던지셨다.
할머니는 끝내 참지 못하셨나 보다.
"아이 거참, 더럽게 시키네!"
"뭐? 더럽게 시켜? 내가 뭘 더럽게 시켜!
말로 시켰지~!"
앗! 큭큭큭큭
할아버지의 귀여운 말대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
내 침상 커튼이 닫혀 있던 게
너무나 감사했다.
"아휴 거 참, 말이라도 못 하면..
내가 몸이 두 개야? 어?
하나님은 뭐 하시나 몰라,
저런 거 빨리 안 데려가시고!"
헐...
순간 모든 병실은 정적이 흘렀다.
알고 보니 할머니의 독설도 만만치 않으셨다.
역시, 지금까지 같이 살아오시면서
그냥 사신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험한 말씀을 하셨지만
슬리퍼를 찾아 할아버지께 드린 것 같았다.
두 분은 함께
병원 내에서 운동이라도 하신다고
밖으로 나가셨다.
두 분이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병실은 다시 정적에서 조용함으로 바뀌고
편안해졌다.
그리고 1시간쯤 뒤에 산책을 나가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두 분은 마치 봄바람을 맞으며
연애하는 것처럼 들뜬 목소리였다.
할아버지는 아이처럼 뭔가를 열심히
말씀하고 계셨고,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우쭈쭈 하듯 받아주시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살아온 할아버지의
군대에서의 생활과,
그런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자녀를 돌보던
할머니의 생활이 같지 않았을 텐데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결국 각자의 방식대로
이해해 주는 모습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틀 뒤
할머니는 퇴원하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아드리며 함께 병실 밖을 나가셨다.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두 분이었지만
두 분은 나에게
사랑은 꼭 다정한 말과 행동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셨다.
각자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그 모습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