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성 -17)
산책하다가
이정표 하나를 발견했다.
매일 걷던 길이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수변 무대 1.65km.
한강 1.45km.
고덕수변생태공원 1.5km.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괜한 불안을 덜어냈다.
길은 그대로인데
표지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잠시 멈춰 쉬어도 괜찮고,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방향만 알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앞에서 내 삶을 떠올렸다.
내 인생에도
이런 이정표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길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지금의 선택은 몇 퍼센트의 가능성을 갖는지,
사랑은 얼마나 더 걸어야 닿는지.
그렇게 적혀 있다면
망설임은 줄어들지 않을까.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신부터 얻고 싶어 했다.
잘될 거라는 근거를 찾았고,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원했다.
누군가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조금 더 쉽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삶에는 이정표가 없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고,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른 채 걸어간다.
돌아보면
지금 서 있는 자리도
한때는 두려워서 고민하던 길이다.
작가의 길로 들어서면
먹고사는 것의 문제와,
직장을 다니며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했었다.
그래도 나는
그때의 나로서 지금을 선택했다.
강물은
곧은 길만 가지 않는다.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굽은 길을 만나면
방향을 바꿔 흘러간다.
형태는 달라지지만
물은 계속 움직인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을 겹쳐 보았다.
여전히 고민은 남아 있고,
확신은 자주 흔들린다.
작가의 길 앞에서는
능력을 의심하고,
사랑 앞에서는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럼에도
어제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걸어왔다.
보이는 이정표는 없지만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다.
확실한 답이 없다는 사실이
전보다 덜 두렵다.
불안을 지우려 하기보다
안고 가는 편이 더 낫다는 걸
조금은 배웠다.
삶의 거리는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다.
도착 지점도
미리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는 걷는다.
길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멈추지 않기 위해서.
이정표가 없다고 해서
방향이 없는 건 아니다.
흐르고 있다는 감각,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자각,
어제보다 한 발 나아갔다는 조용한 확신.
어쩌면 그것이
내가 만들고 있는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엔
인생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삶의 흐름을
잃지 않으려는 연습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보이지 않는 표지판 대신
나의 발걸음을 믿어본다.
도착은 아직 멀어 보이지만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조금 안심한다.
그래서 다시
천천히 걷는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