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품
잠이 안 오는 새벽
집 안에서 창밖을 내려다봤다.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너무 조용하다 못해
왠지 모를 음산한 기운에 닭살까지 돋았다.
이런 기분 언젠가 느꼈던 거 같은데...
그때 문득 14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난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한대 피우려고
집 앞 빌라 계단에 걸터앉았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두 모금...
그리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무거운 돌덩이가
내 다리를 짓누르는 거 같았고
너무 아파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손을 휘적휘적 거리며
뭔가를 주먹으로 연신 내리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나는 교통사고가 났던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나를 안고 울고 있었을까?
엄마와 나는 5층짜리 빌라
반지하에 살고 있었다.
어떻게 반지하 방 안에서
내가 사고가 난 줄 알고 나왔을까?
나중에 엄마한테 듣기로는
밤에 잠을 자는데 내가 아파서
신음 소리를 내며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박차고 내 이름을 부르며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사고를 낸 피의자는 우두커니 서서
나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쓰러져 있는 나를 끌어안고
그자에게 신고를 했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그자는 말없이 그냥 보고 있다가
신고하지 않았다고 했단다.
그자는 119에 신고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도 안 보는 새벽이니
그냥 나를 버려두고 가려고 했을까?
아니면 사고에 너무 놀라서
넋이 나간 것 마냥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옛날 일을 생각하니
섬뜩한 기분이 든다.
피의자는 이렇게 말했다.
"쓰레기 봉지인지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그자가 운전하던 차는 대형 승합차였고
보험도 안 되는 무보험 차량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인가?
나도 1주일 전 더 좋은 혜택을 위해
보험을 해약한 상태였다.
그 큰 무보험 차량은
내 발목을 밟고 지나가 발목 골절에
고관절 탈골, 허리, 어깨, 머리를 다쳤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 집 형편에
아무 보험도 안 들어져 있는 무보험 차량,
아무 보험도 안 들어져 있던 나,
이게 무슨 일인가, 왜 이렇게
나에겐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지?
하지만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
"우리 아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두 다리가 아니라 다행이고
얼굴이 아닌, 발목이라 다행이었고
허리가 아닌, 발목이라 다행이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반지하에 소리도 안 들리는 방에서
목소리를 듣고 나왔을까?
너무 아파서 목소리도 안 나왔고
엄마가 나왔을 땐 기절 상태였는데 말이다.
우리는 가끔 그때의 기억을 꺼내
이야기하다 보면
엄마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나의 엄마뿐만이 아니라
자녀를 둔 엄마라면 누구나 그런 것 같다.
엄마보다 무거운 아들을
품에 안고 있던 엄마.
그때 그 따스함을 생각하니
어느새 새벽의 섬뜩함은 사라지고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지금은
술, 담배를 안 하게 되어서
엄마의 걱정거리를
조금이라도 덜어 드렸다는 마음에
내 어깨가 으쓱거리며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