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벌써 다 풀렸다.
며칠 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그날따라
적적한 방 안을 텔레비전 소리로 채우려
볼륨을 평소보다 조금 높였다.
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따라 전화를 받기가 망설여졌다.
왜였을까.
엄마는 지금 살고 있는
LH 임대 아파트를 분양받으려 하신다.
대출 관련 상품이 이해가 안 가셔서
LH 상담원이 엄마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많은 전화 통화를 했었다.
마지막엔 이제 다 이해했다며
노트에 꼼꼼히 적어 놓았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런데.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지인분과
이야기하다가 집 분양 이야기가 나왔고
대출 상품이 사기가 아니냐는 말에
걱정이 되어 나에게 전화했다.
“엄마가 이해가 잘 안 돼서
네가 내일 전화해서 물어볼래?”
“엄마 근데 내가 들어도 뭘 알겠어요?”
“너는 부동산에서 일했던 애가 그것도 모르니?”
나는 상가 분양을 2년 정도 했었다.
하지만
LH 임대 아파트를 분양받는 일과
상가를 분양하는 일은 다르고
그 일을 그만둔 지는 3년이 넘었다.
부동산에서 일했던 애가 그것도 모르니?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너무나 상했다.
“엄마 난 상가 분양을 한 거지.
나라에서 하는
LH 임대 아파트 분양한 게 아니에요”
“그래도 알 거 아냐, 몰라?”
“나도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누나나 매형한테 물어봐요
최근에 분양받았으니까 잘 알 거잖아요”
“나랑 통화한 언니가 애들은 다 알 거라고
애들한테 물어보라고 하는데
넌 모르니?”
엄마랑 통화했던 지인이
애들이 다 알 거라고 했단다.
엄마의 말투가 난 너무 화가 났었다.
“엄마, 그러니까
잘 아는 누나한테 물어보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자식들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데
됐어. 끊어!”
엄마와 친하다는 그 아주머니는 왜 엄마한테
아들이 다 해준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해서
이런 사달이 나게 한 건지
그 아주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시끄럽던 텔레비전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소리를 낮췄다.
내가 왜 이렇게 억울하고 기분이 상했을까?
최근 나에게 있었던 이혼이라는 일 때문에
아직 마음의 상처가 남아 있던 것일까.
아직은 마음의 여유도 없고
예민함이 다 없어지지 않았는데
엄마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말로,
다른 사람의 아들과 비교하는 말투로
엄마 스스로가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며
불행하다는 듯이 하는 말들이
기분이 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번 생각해 봤다.
왜 나랑 통화하며
엄마는 그런 말투로 말했을까?
엄마가 처음에 부탁했을 때
아무 말 없이 부탁을 들어줘야 했나?
그러면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한테 그동안 그렇게나 잘못했나?
엄마도 세상살이가 힘들었겠지.
IMF 이후, 지병으로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40대 중반,
지금의 누나와 내 나이 또래에
젊은 엄마는 혼자가 되었다.
없는 형편에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엄마 것이라고는
지금 분양받으려는 집이 다였을 텐데
얼마나 불안했을까.
내일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과하고
LH에 전화해서 통화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마음이 불편한 채로,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억지로 눈을 감았다.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하기 전
누나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나랑 통화 후에 누나에게 전화했고
나에게 했던 상처의 말을
누나에게도 했던 거 같다.
"다른 사람들 자식들은 다 해준다는데..."
누나도 기분이 상했던 거 같았다.
결국 매형이 잘 설명해 드렸고
어머니는 잘 이해하신 거 같다고 한다.
누나와 통화가 끝나고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혹시 엄마가 아직 이해를 못 한 게 있다면
LH에 전화해서
이해할 때까지 물어보리라는 각오로.
'뚜루루루'
신호가 꽤 오랫동안 간다.
그리고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어, 아들~ 왜?”
너무나도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
엄마는 벌써 다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