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체 사진 속에만 있었다
요즘 어머니와 있었던 일들을
글로 쓰고 있다.
브런치에 올릴 글의 커버 사진으로
어머니와 내가 함께 나온 사진을 쓰려고
핸드폰 사진첩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음식, 여행,
풍경과 꽃, 구름 사진
아주 많은 사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은 별로 없었다.
엄마가 꽃 앞에서 웃는 사진,
밥상을 차리고 활짝 웃는 사진,
카페에서 활짝 웃는 사진.
그런데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진으로 나오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살이 많이 찌지 않아,
독사진도 많이 찍고,
셀카도 종종 찍어서 사진이 있는데
30대 후반이 되면서
불면증에 술까지 마셔대서
20kg이나 살이 쪄버린 탓도 있고
나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사진을 보면 어딘가 어색했고,
웃는 얼굴도, 표정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정말 사진이 안 받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현실을 모면하려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누가 같이 찍자”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찍어드릴게요”라는 말로 대신했었다.
30대 후반부터는 단체 사진 이외에는
내 사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 함께 나온 사진도 없었다.
뒤적거리며 쓸만한 사진을 다시 찾아본다.
엄마가 예쁘게 웃고 있는 사진은 많지만
그 옆에 내가 없고
내가 잘 나온 사진에는
엄마가 고개를 돌리고 있거나
사진이 흔들려 있었다.
사진을 고르다 보니,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이었다.
누나보다 앞서 걷고 있는
엄마와 나를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는 나도 용기를 내어
지금의 내 삶을 당당하게 마주하며,
사진이 잘 나오던 나오지 않던 신경 쓰지 않고
카메라 앞에 나아가야겠다.
옆에는 든든한 엄마가 있으니까
조금은 용기가 생긴다.
생각해 보면,
든든한 우리 엄마는
늘 누군가의 프레임 안에서 살아오셨다.
아빠의 아내로,
나에게는 엄마로,
가족에게는 희생하는 사람으로.
그 프레임 안에서
엄마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하는 우리 엄마,
사진을 찍어드릴 때마다
나는 엄마의 웃음을 보며 뿌듯했다.
“엄마, 예쁘게 나왔어.”
“이번엔 진짜 잘 나왔어.”
엄마는 그 말에 늘 웃으셨다.
“또 찍어봐”
그 웃음이 좋아서
나는 또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지금 태어나면 연예인을 했을 것이다.
나도 이제는 사진을 찍기보다,
가끔은 엄마 옆에 서야 할 것 같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도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찍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으로 남아야겠다.
그렇게 찍힌 한 장의 사진은
우리의 추억 속에 오랫동안 살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