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분 30초

엄마랑 전화통화

by 이청목

글을 쓰기 전, 책을 한 권 읽고 있었다.


하루에 한 시간은 꼭 책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지 1주일 되었다.


처음엔 그렇게 읽기 싫고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는지

10분마다 시계를 들여다봤다.


지금은 조금 적응이 돼서

30분에 한 번만 시계를 본다.


몸이 근질근질거리고,

시계를 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걸 보니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때였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시계를 한 번 보고,

발신자를 확인하니 엄마였다.


1시간을 채우려면 5분이 더 남았지만

엄마의 전화는 평소보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냥 하는 말이야" 라며

안전장치부터 발동을 시켰다.


"그냥 동네 아는 분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라고 하면서

얘기해 준 건데 그냥 들어봐"


이미 내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걸 걱정하며

몇 번이고 안전장치를 준비하는 엄마에게

무슨 내용인지 듣지 않았지만 괜스레 미안했다.


엄마가 나에게 해 준 말은 이러했다.


동네 아주머니가 보험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거기는 기본급도 있고 원래는 80만 원인데

지금은 150만 원이나 올랐대.


원래 다른 분에게 전해 주라는 말이었지만

이 말을 들었을 때 내 생각이 났다고 하신다.


옛날 같았으면 단칼에 싫다고 했을 나지만,

이 얘기를 꺼내기 전에 그냥 하는 말이라며

안전장치를 몇 번이나 했던가.


영업과 자영업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엄마가 말씀하신 보험일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었고

벌써 몇 번이나 같이 하자는 제의도 있었다.


엄마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그 일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그리고 난 작가로서 글을 쓰겠다고

내 의사를 밝혔다.


엄마는 애써 알겠다며 조금은 아쉬운 말투로

그냥 말한 거라고

다시 한번 안전장치를 발동시켰다.


엄마는 내 반찬 걱정을 하시며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일상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의 내용은 대부분

나를 걱정하는 이야기였다.


반찬 걱정, 건강 걱정, 돈 걱정

그러다 외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네 외할머니가 맨날 나 걱정한다고 하더니

이제 그 마음을 좀 이해하겠더라."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요즘따라 많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엄마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간 것을

보고 좋아하셨을 걸이라는 안타까움과


할머니한테 잘못했던 일들

대들거나, 화냈던 일들이

생각난다며 미안해하셨다.


엄마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을

반성하고 계셨다.


이렇게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건

나도 엄마한테 잘하라는

엄마의 고단수적인 대화법인가?

그렇다면 아주 잘 먹힌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이렇게 반성하며

글로 쓰고 있지 않은가.


엄마와 전화 통화 24분 30초 동안

모든 대화가 나의 걱정이었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화내고 싶어서 화를 낸 것이 아니고

나도 엄마에게 잘못하고 싶어서

잘못한 것들이 아닌 듯이


그 내용을 속 깊이 다 아는 우리의 엄마들은

언제나 우리 편이고 언제나 내 편이었다.


엄마의 엄마도 언제나 엄마 편이었을 것이다.


나는 못 다 읽은 책 5분 동안 반성해 본다.


엄마랑 통화한 24분 30초 동안

내 걱정만 하게 해서 미안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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