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만에 처음 제주도를 간 엄마

이유가 있는 엄마의 버킷리스트

by 이청목

오전 8시 10분

렌터카를 받고 제주 공항을 빠져나왔다.


68년 만에 처음으로

엄마의 첫 제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버킷리스트 첫 번째


처음으로 간 여행지는

비자림이라는 숲이었다.


아직 아침 공기는 살짝 쌀쌀했다.

우리는 다 뜻한 차를 한 잔씩 들고

산책하듯 숲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비자림 안에는

음료를 들고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주문을 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빨리 숲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는

그 뜨거운 유자차를 호~호~ 불어가면서

어느새 잔을 비우셨다.


"크~ 가자!"


"벌써??"


비자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숲길.

공기도 좋고 햇살도 좋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활짝 웃는 엄마의 표정이 참 좋았다.


"제주도 진짜 와보고 싶었는데

이제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 낄 수 있겠다.

사진 좀 찍어봐!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포즈를 취하신다.

역시! 엄마들의 포즈다.


난 엄마한테 다른 포즈를 취해달라고

얘기를 했다.


엄마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른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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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가 모르는 엄마의 다른 모습이었다.


숲을 거닐며 다른 나무만 보이면

사진 찍어 달라고 하신다.


"엄마 아까 그 나무 찍었는데..?"


"그래? 호호호호"


"응 아까 들어가는 길에 찍은 나무야"

큭큭



엄마랑 나는 비자림 숲에서

서로 키득 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카메라가 되었던 나는

10시 50분쯤

카메라 역할이 끝나고

엄마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인

돌문어를 먹으러 향했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 두 번째


불향 가득한 직화 돌문어는

"엄마와 나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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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하고 담백한 문어,

그 위에 직화 향이 스며들어

한입 넣자마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와 ~ 불향 봐 진짜 맛있다"

엄마도 감탄을 멈추지 않으셨다.


"이거 얼마야 비싸지?"


"안 비싸 많이 잡수세요"


그런데 자꾸 나한테 문어를 주신다.


"엄마, 문어 많으니까 그냥 드세요

내가 알아서 먹을게!"


"그냥 너 먹는 거 보기 좋아서"


"그래도 그냥 잡숴 난 자주 먹어요"


그래도 어머닌 잘 드시질 않으셨다.


자세히 보니

엄마는 어딘 가 불편해하셨다.


"엄마 어디 아파?"


"사실은 잇몸이 아파서

씹을 수가 없네"


하...

"그럼 치과를 가야지 왜

그러고 참고 있어?"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나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쁘지 않은 말투가 나올까 봐

아무 말하지 않았다.


속이 상했다.

엄마가 아파서,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가 아프다는 걸

몰랐던 내가 더 미워졌다.


그리고

그냥 내가 먹는 게 보기 좋다던

엄마의 말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그렇게 속상한 점심을 다 먹고 난 뒤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엄마의 버킷 리스트 두 번째

파란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출발했다.




카페는 정말 파란 바다가

사방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바다가 보여서 그런지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와 진짜 파랗다, 우와 엄청 파랗네~"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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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 생각해 보면

"와 진짜 파랗다" 이 말이

엄마가 표현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표현이었던 거 같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 세 번째


엄마가 제주 오기 전부터 노래를 부르시던

갈치 통구이


“갈치구이통으로 나오는 데 있데

거기도 갈 거야? 그거 먹어보고 싶은데

그건 비싸니까 엄마가 사줄게"


"알겠어요! 가장 맛있는 곳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엄마와 난 식당에 도착했고

그 식당은 바다 뷰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맛있게 잘 구워진 살이 통통한

갈치 통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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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처음 보는 갈치 통구이가

신기하기라도 동그라진 눈으로 보셨다.


“오~ 요거 진짜 맛있다.”

엄마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엄마는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이제 친구들이 갈치구이 얘기하면

나도 먹어봤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엄마는 그동안

지인들이 제주도에서

통구이 갈치 먹은 얘기가 나오면

낄 수 없어서 그냥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제주에 여행을 와서

엄마에 대해 알아갈수록

왜 계속 미안하고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다.




엄마의 버킷 리스트 마지막

제주도 벚꽃 아래서 사진 찍기


벚꽃이 어디가 많은지 검색을 하다가

숙소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산책하기 좋았고,

높은 산이 있거나 하지 않지만

나무가 많고 꽃이 많아서 좋았다.


역시 엄마는 사진을 엄청 많이 찍으셨다.


햇살과 벚꽃, 그리고 어머니.

그 세 가지가 한 프레임에 담겼을 때

나는 또 한 번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 엄마, 정말 해맑으셨다.


신이 나셨는지 정말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는 모습,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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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건

엄마와 처음으로 단둘이 함께한 여행에서

엄마를 알아 갈수록 내 마음이 아팠다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엄마의 환한 미소와 따뜻한 마음

그걸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하루하루였다.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음식보다 더 진하게,

내 마음속에 남은 이 순간들.


다음엔,

더 좋은 계절에 엄마손 꼭 잡고

가족 모두와 함께

더 많이 웃고 떠들러 와야겠다고

나 혼자 조용히 다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고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꼭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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