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항우울제를 만난 이야기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2주 치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별다른 검사 없이 증상을 듣고는 항우울제를 가져오니 남편도 짐짓 놀란 눈치였다.
제일 놀란 건 나였다.
내가 우울증이라니. 내가 우울증이라니?!
이런 걸 우울증이라고 하는가 보구나.
어쩐지 기분이 회복이 안 되더라니.
진한 민트색을 띤 푸록틴 10mg을 아침에 한 알, 저녁에 한 알씩 먹었다.
푸록틴 혹은 푸로작, 폭세틴이라고 불리는 이 약은 우울증에 처방되는 대표적인 약물로 이름도 어려운 SSRI 계열의 약물이라고 한다.
부지런히 조사를 해 보니 즐거움이나 행복과 관련한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재합성을 막아 기분이 계속 좋아지도록 유지를 시켜주는 약물인 듯했다.
우울증에 주로 쓰이긴 하지만 폭식을 하는 사람이나 월경 전증후군(PMS)을 겪는 이에게도 폭넓게 쓰이는 약물이다.
그래서 먹는 동안 식욕이 줄어서 다이어트가 되고 PMS도 나아져서 의외의 덕을 보았다.
약 모양은 작지만 색깔이 쨍한 것이 우울증 환자인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기분이었다.
푸록틴은 작년 4월 말부터 복용을 시작해서 아침저녁에 10mg씩 먹다가 아침 약을 20mg로 증량했었다.
그리고 여름엔 아침저녁으로 20mg씩 먹다가 서서히 줄여갔었고 23년 1월에 단약에 성공했다.
그렇게 이 약과는 안녕일 줄 알았는데 23년 올해 4월 말에 정확하게 재발을 하면서 다시 복용을 하고 있다.
올해도 아침 10mg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아침에 20mg, 저녁에 10mg씩 먹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올해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다른 약들도 시간차를 두고 함께 복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우울제나 정신과 약에 대한 정보가 막연하고 사람들마다 개인차가 다르기 때문에 꼭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내가 먹어 본 푸록틴의 느낌은 이름 그대로 항우울제여서 우울함을 막아주는 기능이 컸던 약이었다.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에 직면하면 어김없이 우울한 느낌이 올라오는데 약을 먹은 지 몇 개월이 지난 시점이 되면 우울해지고 싶어도 우울해지지 않는 방어막 같은 게 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 우울해지고 싶어도 우울에 빠지지 않네?'
다만 약효가 듣는데 시간이 걸려서 적게는 2주 느리게는 1-3개월 정도 먹어야 우울한 생각이 덜어지는 약이었다.
그 시기를 기다리는 매일매일이 고통이었다.
우울이라는 진창에 빠져서 숨을 쉬기 위해 매일 뻘밭에서 헤엄쳐 나오는 기분.
정말 아파 본 사람들만 알지 않을까.
플라세보 효과였는지 약을 먹었던 첫 해에는 복용한 지 2주가 지나자 글이 눈에 들어오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효과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오!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잖아?!'
글자를 읽기 시작한 아기처럼 눈이 반짝여지는 경험이었다.
우울증 약이 처음이었던 나여서, 아무래도 약에 대한 신뢰가 컸던 것 같다.
이내 다시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10개월 내내 복용을 해야 했다만, 기분이 급격히 나아지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복용할 경우 우울이라는 먹구름을 머리에서 걷어주는 건 확실했던 약이었다.
먹고 자고 출근을 하게 만드는 신기한 약이어서 나를 살렸던 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푸록틴/폭세틴/푸로작을 복용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위장장애에 대한 부작용이다.
당시에는 빈속에 한 알씩 먹었는데 부작용 중에 위장장애가 있을 수 있어 복용을 하게 된다면 식사를 하고 식후에 먹는 게 좋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심장과 명치가 쥐어짜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의사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빈 속에 먹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아침 식사가 어려우면 점심에라도 꼭 밥을 먹은 후에 약을 복용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푸록틴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빈속에 먹어서 속이 쓰리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약이 적응이 되면서 명치가 아픈 느낌은 사라져서 문제없이 복용을 하고 지내고 있다.
둘째, 음주를 할 경우엔 복용해서는 안 된다.
이름난 술쟁이여서 우습게도 약을 받는 순간부터 ‘술을 마셔야 할 때는 약은 어떻게 하죠?’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우리 선생님의 습관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것이었는데 한 번 머리를 그러잡으시더니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술을 마셔야 할 때는 약을 같이 드시면 안 됩니다. 술을 마시는 때에는 약을 거르세요.”
간 손상이나 여러 부작용이 있으니 약과 술을 함께 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 말도록 하자.
정신건강의학과 약물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 '음주'인데 음주 중에는 약 복용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금주가 동반 되는 것이 좋다.
기분이 유쾌하지 않더라도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시점은 2-3달 정도 복용을 하는 시점인데 그때부턴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굳이 약을 먹어야 해?'라는 만용을 부리게 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던 시점부터는 늘 그러던 대로 주말이 오면 남편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겼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술로 인해 혼이 난 사람 중 하나로서 뒤늦은 후회를 남겨 본다.
약과 술 중에 술을 고르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더 성실하게 복용했더라면 더 빠르게 일상을 찾고 재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셋째, 식욕에 대한 문제이다.
나 같은 경우 식욕이 급격히 없어지며 살이 빠지는 바람에 우울증이 맞다고 느낀 경우였는데 푸록틴을 먹는 동안 식욕이 급격하게 회복이 되지는 않았다.
푸록틴을 복용하면 식욕이 저하되어서 다이어트 효과가 같이 나게 된다.
신기하게도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식욕이 조절이 된다.
푸록틴의 문제는 우울증 회복이 되면서부터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나아지는 과정에서 감약이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잃었던 식욕이 되살아나게 된다.
기분도 나아지고 의욕도 생기니 그동안 안 먹었던 것들을 챙겨 먹게 되고 여기저기 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러 가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잠들어있던 식욕이 폭발하게 되므로 나처럼 잃었던 몸무게보다 살이 더 찔 수 있다.
단약 과정에서 살이 찌니까 진짜 조심해야 한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5kg가 빠졌다가 10kg가 찌는 바람에 인생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기도 했다.
그 외에 불면증 등의 부작용들도 있어서 아침에 먹는 것을 권한다고 하더라.
나 같은 경우 22년도에 복용 과정에서 수면에 문제가 없었는데 23년도에는 수면장애도 같이 생겨서 이른 저녁에 먹는 것으로 타협을 보면서 조절을 했다.
행복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도록.
세로토닌을 뇌에서 머물게 하는 약을 달고 살아야 한다니.
행복해지려고 사는 건데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나 자신이 한 편으로 가엾고 웃겼다.
그러나 행복해지려면 일을 해야 하고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로 자신이 불쌍하다면 자기 연민에서 고개를 조금만 들어 진실로 나를 돌보는 방법에 인사를 건네어 보자.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나는 약을 먹고 회복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