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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강 Dec 04. 2023

그것이 우울증이었네.

우울과 우울증 구별하기

처음에는 우울증인지도 모르고 3월을 보냈었다.

해가 갈수록 매번 일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것은 나의 특징이었기에 남편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이 잦았다.

슬픔을 공유하며 덜어내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슬픔과 맞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주의이다 보니 견해가 달라 서러운 점이 생기더라.

나는 더 깊은 슬픔에 빠져서 하루종일 학교 생각을 머릿속에 채우며 불행을 곱씹고 있었다.


우울증에 걸리게 되면 진짜 뇌가 아픈 느낌이 드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작년의 우울증에 걸렸을 때 어땠는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남편만이 오롯이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데, 퇴근을 하면 불을 끄고 조용히 소파에 축 늘어져 있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일 때문에 힘든 줄만 알았지 나도 내가 우울증인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증상에 대해 상담을 받고 나아질 줄 알고 방문했던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선생님께서는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시더니 나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해 주셨다.


그제야 내가 우울증임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나도 병원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기고 싶었다.

이 처진 기분을 어떻게든 올려보겠다고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쉬어도 보고 별 짓을 다 해 보았더랬다.


하지만 '우울감'과 '우울증'은 확연히 다르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정말 죽겠다 싶으면 알아서 제 발로 병원에 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http://www.samsunghospital.com/dept/common/self_check03.do?&DP_CODE=DEP&MENU_ID=003011

'우울증 자가진단'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자가진단 페이지를 첨부하였다.

단순하게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2주 이상 우울한 감정이 지속이 되고 있다면 꼭 진단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우울감'과 '우울증'은 확연히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간단한 다섯 가지 질문으로 뽑힌 테스트에서 몇 개가 해당되어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주로 겪은 초기 우울증 증상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브레인 포그(Brain Fog)'라고 불리는, 머리가 멍해서 일이 안 되는 현상이었다.

머리에 구름이 낀 것처럼 멍해져서 업무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가 되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회사에 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멍하고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로 인해 수업과 업무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는 앉아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글자가 잘 읽히지 않고 머리가 무거워서 온몸이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그 상태가 집에서도 지속이 되어 집안일이 잘 되지 않고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잘 읽히던 글이 읽히지 않거나 늘 평소대로 하던 일이 잘 되지 않는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두 번째,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무기력을 넘어 기력 자체가 소멸되었다.

우울증은 뇌가 아픈 병이라 그런지 정말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생활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는 질병이다.

다리가 부러져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우울증 환자에게 힘을 내라는 말이 의미가 없는 게 기력 자체를 낼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증상 때문에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겪는 것이 우울증이다.


작년은 경도 우울이어서 출근은 가능했지만 회사에선 마른오징어를 쥐어짜서 물을 짜내는 심정으로 일을 해야 했고, 집에서는 그 쥐어짠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누워 지내야만 했다.

다음 날 눈을 뜨는 것이 힘들었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세 번째, 식욕이 없어지고 체중의 변화가 생긴다.

우울증이 발병했던 작년에는 감사하게도 수면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 뜻은 그다음 해에는 수면장애도 얻었다는 뜻이다.)

잘 먹고 회사도 다니고 있었다.  

회사도 다니고 있었지만, 병원에 꼭 가야겠다고 확신했던 계기가 있었는데 식욕에 문제가 생기면서부터였다.

3월부터 내가 식욕을 잃더니 내 삶의 필수 요소인 '먹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어린 도덕 선생님은 이름난 쩝쩝 박사였던 내가 빠르게 식욕을 잃는 것을 보고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셨는데 내가 제일 안타까웠다.

일이 힘들어서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먹을 것을 눈 앞에 두고도 먹고 싶은 느낌이 없었다.


‘먹고 싶지 않다 ‘는 생각은 체중과 연결이 되면서 작년엔 5-6kg가 빠졌었다.

우울증이 낫고 나서 10kg가 쪘고 그 이후에 재발을 하면서 23년 5월에는 9kg 정도 빠졌다.

신기하게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면서 식사량을 점점 줄이게 되는 게 눈에 보였다.

말 그대로 내가 스스로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사실에 놀라서 나는 병원을 가게 되었다.


그냥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보다 등, 사람들은 우울의 이유를 다양한 곳에서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말 그대로 ‘발버둥’을 친다.

정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별 짓을 다 했던 것 같다.

광기로 가득한 한 해였다.


입맛이 없으니 일부러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녔고 의욕이 없으니 의욕이 생기게 좋은 곳을 다녔다.

내 유일한 취미였던 발레도 열심히 했고 일이 안 되니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발버둥을 쳐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병원을 가기 전 남편은 내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좋은 곳이란 좋은 곳은 다 데려가고 맛있는 것이 있다면 모두 데려다 먹일 정도로 정말 무던히 애를 썼었다.


하지만 속초의 아름다운 파도를 보며 나는 울고 있었고 맛있는 밥을 먹어도 쌀알을 모래처럼 씹고 있었다.

결국 병원에 가서야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있었고 쌀알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됐다.


혹시라도 우울증을 검색해서 온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최대한 빠르게 병원을 가 볼 것을 강력히 권하는 바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예약이 많은 편이라 초진 환자는 심지어 예약마저도 쉽지 않다.


최대한 빠르게 가라.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병원들을 찾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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