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눈물을 보인다는 것.
어른의 미덕이란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는 데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이처럼 남들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다.
표정에서 마음이 다 드러나는 편이라 감정을 숨기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도 꾸역꾸역 잘도 해냈었다.
학교는 적어도 그런 곳이어야 교육이라는 게 가능한 곳 같았다.
나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이들은 폭발하는 화산처럼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었고 그걸 받아달라고 몸부림을 쳤다.
그걸 수용하면서 교육에 연결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최대한 아이들의 감정을 수용하면서 그에 맞게 감정을 조절하고 지도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래서 가장 먼저 돌봐야 했던 내 마음은 누가 돌봐주었나.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집에 가둬지듯 봉인되었던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왔다.
초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사회화적 경험이 없었으니 당연히 탈은 중학교에서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거칠었고 예의가 없었으며 상대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이인 건데, 내가 예상했던 중학생의 모습과 너무나도 달라서 그것에 적응하는데 힘든 3월을 보냈었다.
3월까지는 어떻게 정신없이 시간이 간다고 치자.
4월부터 탈이 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 안에 있으면 겪어본 적도 없는 공황장애가 온 것처럼 심장이 답답하고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엔 공황장애가 온 건가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토로했고 남편에게도 힘든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남편도 겪어본 적이 없는 상황이니 당연히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고, 문제해결이 중요한 남편의 경우 그렇게 지속적으로 마음이 힘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정신과.
정신건강의학과.
정신병원.
뭔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정신병이 있을 리가 없다고 꺼려하게 되는 단어가 아닌가.
꺼려하는 것과 별개로 정말 일이 안 되어서 힘든 사람들은 알아서 가게 되어 있더라.
문제는 정신과의 경우 초진 예약을 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집 근처의 정신과들을 지도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변에는 많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어 오히려 골라갈 수 있을 정도였는데 괜찮은 평이 있는 곳은 한 달은 족히 기다려야 초진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 마음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그리고 그중 하나가 나라는 사실에 슬퍼지기도 했다.
이렇게나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그리고 나도 힘든 사람 중의 하나이구나. 하고.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아서 나름 맞는 병원을 첫 도전에 찾을 수 있었는데 초진 예약이 그 주 내로 가능했던 오래된 정신과의원이었다.
여전히 먹구름이 끼인 머리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어서 살다시피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에 예약했던 병원에 내원을 했다.
첫 초진은 2022년 4월 21일에 받았었다.
내가 방문한 병원은 양꼬치집 건물 뒤편에 있는 작은 정신과의원이었는데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에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얌전한 분위기에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병원과 다름없이 내 이름을 부르셨고 진료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중년의 의사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로 왔냐고 따스하게 물어봐주셨는데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을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학교에 있으면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내년 2월까지가 계약이라 2월까지는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하는데 매일 출근해서 학교에 있는 게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
눈물이 허벅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스크로 젖어들어가는 눈물을 훔치면서 우리 가족의 이사와 아이 계획 등등 해야 할 것들에 대해 할 수 없는 절망적인 마음을 설명했다.
선생님께서는 짐짓 이야기를 들어주시더니 지금 피폐해진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1년 전 이야기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피폐해지고 지친 마음부터 회복을 하고 나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보험처리를 하겠냐는 직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의 약국에서 지퍼백에 담긴 파란색 알약을 28알을 받아왔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한 알씩 먹어야 한다는 약.
처방전을 보니 푸록틴이라고 하는 약이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약이름만 인터넷에 입력해도 어떤 약인지 친절히 알려주는 세상이지 않은가.
검색창에 푸 록 틴 을 넣어보니 항우울제로 쓰이는 대표적인 약 중 하나였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그렇게 우울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냥 마음이 힘들다거나 그런 상태가 아니라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이라는 이름과 처음 만났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