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널 보고 우울증이라고 하겠니.
2022년 4월 말부터 23년 1월까지 항우울제를 복용했고 경도우울증이라는 진단서도 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일반 병원처럼 뚝딱하고 진단서를 내어주지 않고 적어도 8주 정도는 진료를 받아야 진단서가 나온다.
우울증 진단에는 경도 우울증과 중증 우울증 두 가지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극최상심각한중증 우울증 같은 건 없나 보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종국에 스스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경도우울증의 경우 사전의 설명대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우울증이라고 보면 된다.
가벼운 우울을 지속적으로 겪게 되며 일상의 한 켠에 우울이 자리 잡는 것이다.
10개월 가까이 앓았던 가벼운 우울증에 대해 소회 하고자 한다.
작년 4월 말부터 5월까지는 우울증이 심해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마음을 안고 살아냈다.
꾸역꾸역 읽히지 않는 문자를 읽어가며 일을 해야 했다.
수업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표정도 좋았을 리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학교라는 공간 안에 있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을 할 수 없다.
이 공간을 뛰쳐나가고 싶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눈을 뜨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기분으로 출근 버스에 올라야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는 이런 기분이려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머릿속에 커다란 먹구름을 끼고, 맑은 표정을 지으며 수업을 하려니 진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입맛이 없었고 식욕이 사라졌다.
아침에는 기운을 쥐어짜 내야 하다 보니 커피를 들이켰다.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쌀밥을 오래 씹을 때 나는 끝맛의 달콤함을 좋아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밥도 잘 먹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새 모이처럼 급식을 받아서 점심에 먹었다.
다이어트를 핑계로 저녁은 가볍게 먹으며 연명했다.
경도우울증 때는 그렇게 생명을 연명하고 주말엔 절망을 잊으려고 술을 마셨다.
주로 남편과 주말마다 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까무룩 잠이 들 때까지 술을 마시며 잊고 싶었다.
내 안의 우울과 절망을.
일요일엔 숙취로 깨질듯한 머리를 붙들고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남편과 집안일을 하고 사형수처럼 월요일을 기다리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4월까지 지내다가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병원에 간 게 4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병원에 다니면서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니 그제야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며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절망적인 마음이 옅어지고 약이 증량되면서 몸에도 활기라는 게 생기게 되더라.
그 활기를 일에다 쏟는 대신에 작년에는 블로그를 정말 부지런히 썼다.
뭐든지 하나라도 열심히 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우울증으로 인해 에너지가 사라진 나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방학이 와서 쉬었어야 했는데도 블로그 거리를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쏘다니는 바람에 정말 쉰다는 느낌보다는 열심히 방학을 채우며 보냈다.
(나를 비우며 살아야 했는데.)
이 시기에는 남편과 갈등이 있었고 감정이 오락가락해서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는 나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격동의 여름이었다.
술을 잔뜩 마신 밤이면 남편이 잠든 사이에 새벽 3-4시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걷다 돌아오곤 했다.
진짜 미친 여자였구나 싶다.
그런 주말들을 보내고 가을이 왔다.
잘 익은 가을의 홍시처럼 성숙해진 아이들과 회복이 된 나는 가을을 잘 버텨냈다.
겨울 즈음에는 완전히 회복이 된 기분을 느껴서 '굳이 병원에 가서 계속 약을 먹어야 할까?'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이사를 하고 입주청소를 하고 가전을 알아보며 정신없는 겨울을 보냈다.
방학이 다가오고 해야 할 일들이 생기니, 활력을 뿜어내며 살았다.
번아웃으로 재만 남은 내가 그 속에서 불사조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병원에 가도 할 이야기가 없어 일상 얘기를 떠들다가 오던 날들이 이어졌다.
이사 후 인테리어 이야기를 신나게 떠드니 어느 시점에 선생님께서 그만 와도 된다는 소리를 하셨다.
약도 받지 않았고, 나의 치료는 종결되었다.
1월의 둘째 주 어느 목요일이었을 거다.
치료가 끝났구나.
더 이상 나는 약을 먹지 않아도 건강한 사람이구나.
안도감과 함께 알 수 없는 허탈감이 몰려오던 그 겨울.
회복과 함께 올라온 식욕 때문에 달덩이처럼 부푼 마음과 몸을 안고 후쿠오카 여행을 떠났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활력이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걸 느꼈다.
누가 널 보고 우울증이라고 하겠니.
평소에도 워낙 밝았던 나여서 우울증을 고백했던 최측근의 친구들은 놀라거나 울거나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였다.
생기를 찾아가는 내 모습에 안도해 주고 기뻐해준 사람들 덕분에 경도우울증은 잘 극복했던 2022년이었다.
그리고 2023년에 다시 우울증에 걸렸다.
1년 만에,
또 4월 말에,
완치라는 말을 내 스스로 외친 지 석 달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