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들.
한때 유행했던 '갓생'이라는 말처럼 나도 갓생 사는 멋진 30대 중반의 10년 차 교사가 되고 싶었다.
짬도 찼고 경력도 있고 이젠 무슨 일이든지 유연하고 멋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나는 멋진 어른.
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다.
완전한 실패
2010년에 태어나 일생의 일부를 코로나와 함께 보낸 gen-C.
이른바 코로나 세대 아이들은 무기력하면서도 무례해서, 교권을 무너뜨리다 못해 박살을 내러 온 아이들 같았다.
코로나를 초등학교 때 겪은 아이들이 입학을 하기 시작했다.
2009년에 태어난 토끼띠 아이들은 아이들 자체가 순하고 고와서 오히려 우울증을 이겨내게 만들어준 고마운 아이들이었다.
그 러 나 웬 걸.
그 아이들을 믿고 이 학교에 남겠다고 했던 일이 작년에 한 가장 큰 실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2010년에 태어난 호랑이 띠 아이들은 입학의 기세부터 달랐는데 어찌나 복도에서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지.
그리고 걷지 않았다.
아이들은 뛰어다녔다.
수업 시간엔 앉아있지 않았다.
종이 치고 3분이 지나서야 슬 슬 들어오기 시작한다.
교사가 앞에 있든 없든 말을 듣지 않았다.
집중을 못했다.
그냥 혼자 태어나 혼자 사는 아이들 같았다.
그런 날것의 아이들이 뛰노는 복도 사이에 있는 우리 교무실은 마치 사자 우리에 던져 놓은 토끼의 꼴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20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욕을 들으며 일을 해야 했다.
진심으로 괴로웠다.
가장 욕설을 많이 듣는 직업은 선생님일 거다.
그리고 “안 돼.”라는 말을 부모 다음으로 많이 하는 직업도 선생님이 아니려나.
3월부터 매운맛을 본 선생님들은 이 문제가 띠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건 띠 때문일 거야."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아뇨, 사회화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본 적도 없이 집에서만 으르렁거리던 아이들은 키보드워리어가 되어 학교라는 정글로 뛰쳐나온 것이더라.
그들을 동물에서 사람으로 만드는 건 초등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시기에 초등학교에 가질 못했으니 아이들이 초등학생인 채로 몸만 커서 중학교로 들어온 꼴이 되었다.
차라리 초등 저학년 때 코로나를 겪었다면 학교라도 나왔을 텐데, 우리 아이들은 애매하게 3학년부터 겪으면서 학교를 나온 경험이 극심하게 적은 세대였다.
초등학교 시즌에 운동이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두엽을 발달시켰어야 했는데 아이들은 그 과정이 거세되어 중학교에 와 버렸다.
애들은 애들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초등교육을 배우지 않은 선생님들과 몸만 큰 초등학생들의 대립이 극심했던 3월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체를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히 서툴고 모르는 것 천지인데 집에서는 어찌나 다들 귀하게 크셨는지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 점에 대해 화가 나면서도 한 편으로는 안타깝고 짠한 생각이 드는 나 자신이 싫었다.
아 정말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나는 참교사이구나.
더 이해하고 잘해줘야지, 이런 아이들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건 참 멋지지만 내 심장에 칼을 꽂는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4월의 일이었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말을 듣게 해 보겠다고 깝치다가 결국 부러지고 말았다.
누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했나.
열 달 동안, 1년 동안, 몇 년 동안 감기를 앓는 사람은 없다.
마음의 골절.이라는 게 더 정확할지도.
마음이 부서졌다.
부러졌다.
우울증이 다시 재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