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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윤민정 Sep 29. 2020

여자의 고향

내가 나로 사는 동안은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장소

어렸을 때 명절이 되면 할머니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내 아버지는 장남이었다. 나는 딸이었지만 장남의 첫째 아이를 우대하는 서열 문화의 영향 때문이지, 할머니 집에 머무를 때면 내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감각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집에서는 할 수 없었던 행동을 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이 나를 보고 귀엽다고 볼에 뽀뽀하면 상대방을 밀친 다음에 얼굴을 박박 문질러 씻었다. 사촌동생이 내 크레파스를 쓰면 “왜 허락 없이 내 물건을 건드려? 이제 저 크레파스 다시는 안 쓸 거야. 만지지도 않을 거야!” 고래고래 소리쳤다. 사촌오빠가 같이 놀자고 다가오면 할머니가 화단의 꽃을 가꿀 때 쓰는 뾰족한 갈퀴를 들고 씩씩거렸다. “나한테 가까이 오기만 해 봐. 이걸로 찌를 거야!” 사실은 사촌오빠와 같이 놀고 싶었지만, 그때는 그런 행동이 내 나름대로 호감과 부끄러움을 표하는 방식이었다. 


“민정이는 성격이 모가 나서….”


내가 친척들 앞에서 망나니처럼 굴 때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리 집에서 그랬다면 분명히 야단맞았을 텐데, 할머니 집에 있을 땐 내키는 대로 해도 괜찮았다. 할아버지가 나를 유달리 귀여워했기 때문일까? 젊은 시절 몹시 폭력적이었다고 들었던 할아버지는 손주들 가운데 나를 가장 아꼈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는 표정에선 그의 어눌한 말솜씨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진한 애정이 묻어났다. 어딘가 외톨이처럼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나 역시 묘한 친근함을 느꼈다. 


한국 가족의 서열 문화, 할아버지의 총애, 내 성격 세 가지가 맞물려서 명절날이 되면 나는 기세등등하게 친척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할머니 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내 ‘아랫사람’으로 보였다. 그중에서도 여자들, 특히 ‘며느리’ 위치인 어머니와 숙모는 가장 비천한 존재로 비쳤다. 나는 평상시에 어머니를 무서워하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할머니 집에만 가면 어머니가 카리스마를 잃고 시중꾼으로 전락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나를 저지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나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의 폭력성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그 이전에도 폭력이라 이름 붙일 만한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청소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각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고 판단할 나이가 되자 그의 알코올 중독, 우울증, 폭력 행동은 무섭게 가속도가 붙었다. 놀랍게도 그 시기에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모두의 입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모든 가정에서 여자들이 울고 있었다. 할머니, 어머니, 나, 언니, 여동생이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다가 그럼에도 기어이 새어 나오는 눈물로 베개를 적셔보지 않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청소년이 된 이후부터 명절에 할머니 집에 가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자리에 모인 삼촌네나 고모네도 우리 집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째서 서로에게 욕을 퍼붓고 주먹을 휘두른 다음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을까? 부엌을 가득 메운 풍성한 기름 냄새와 내가 아는 장면을 통합시킬 수 없었다. 한쪽 세계엔 베개를 적시는 눈물, 터져 나오는 비명, 깨지고 부서진 물건들이 있고 또 한쪽 세계엔 바삭바삭한 부침개와 살얼음이 낀 단술, 한복, 윷놀이, 덕담이 있었다. 어른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두 세계를 미꾸라지처럼 오갔다.


청소년기의 나는 명절날 할머니 집에 가면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서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렸다. 혼자 있기는 심심했고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 집은 여러 개의 방이 넓은 마루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있는 구조였다. 나는 마루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방문을 하나씩 열어 봤다. 한 방에선 아버지와 삼촌이 담배를 뻑뻑 피우며 바둑을 뒀다. 또 한 방에선 할아버지가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씨름 경기를 보고 있었다. 사촌들은 마당에서 자기들끼리 펄쩍펄쩍 뛰어놀았다.


내가 서성거리다가 결국 머무르게 되는 곳은 엄마, 숙모, 할머니 옆이었다. 세 여자는 음식을 다 만들고 나면 방바닥에 둘러앉아 믹스 커피를 마셨다. 그때부터 하염없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누군가의 안부나 먼 친척 집 소식 등이 오갔는데 내용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잘 모르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여서만은 아니다. 세 사람은 한 사람의 말이 끝나면 다른 사람이 응답하는 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나온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불쑥불쑥 꺼내기도 하고 때로는 두 사람이 동시에 말하기도 했다. 보통 둘이 같이 말하기 시작하다가도 상대방이 말하려는 것을 알면 입을 닫고 기회를 양보하기 마련인데, 세 사람의 대화에선 그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화라기보다는 돌림노래 같았고, 때때로 박자가 조금 엉켜서 두 성부쯤 동시에 노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노래가 이어지기만 하면 되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파도처럼 졸음이 밀려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가족도 친척도 만나지 않고 사는 지금, 과거에 눈을 감고 들었던 목소리를 종종 떠올리곤 한다. 경상도 여성들의 어미와 억양이 이어지면서 만들던 독특한 가락. “했지예.” “그랬어예.” “그랬다 아임니꺼.” 이것은 경상도 남성들은 거의 쓰지 않는, 중장년층 여성에게 남아 있는 어미인데 한때는 이 말투가 비굴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친족 여성들의 대화에서 연상되는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형이상학적인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들의 낮은 교육 수준을 드러내는 대화의 내용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무력함과 비굴함이 묻어 있는 말투. 그러나 동시에 이 질질 끄는 억양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들리는 곳에서 세상 어떤 장소와 비교할 수 없이 마음을 다 놓고 잠들 수 있었다.


지금도 나를 재워줄 책을 찾느라 밤늦은 시간에 책장 앞을 서성일 때면 으레 경상도 사투리가 잔뜩 나오는 책을 집어 든다. (박경리 작가의 책 말고는 드물다. 아는 분들 제보 부탁드립니다.) 친족 여자들이 이야기 나누던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그들을 다시 만날 생각은 없다. 미디어에서 순진한 얼굴로 고향과 어머니를 칭송하는 남자들의 얼굴을 보면 여자인 나에게 고향의 의미가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드시 떠나야 하는 곳이면서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곳, 그러면서도 내가 나로 사는 동안은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장소. 기억을 떠올리면 따스하고 포근한 기분에 젖지만, 뒤따르는 혐오감 없이는 도저히 회상할 수 없는 시공간. 때로는 나 자신이 오디세우스의 진정한 후손 같다. 돌아갈 이타카는 없지만 내가 편안히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찾으려고 항해와 표류를 거듭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아마도 한동안 나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2020년 한국 여성을 주인공으로 《오디세이아》를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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