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에세이 - 2019년 1월 14일
생각해 보니 작년 GQ 2월호에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글을 투고 했던 적이 있다.
한창 정신없이 회사에 다니던 시기여서 매거진이 출간 되고도 신경을 쓰지 못했었는데, 1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다시 들여다 보니 10여년에 가까운 나의 서울살이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가끔은 스스로가 2013년 봄과 2016년 여름 사이의 시간에 갇혀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좋은 추억과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재건축사업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내쳐짐'으로 인해 충분히 마무리 되지 못한 수많은 감정과 기억, 인연들 때문일 것이다.
과거를 내딛고 새롭게 나아가는 힘이 필요함에도, '새로움'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제는 조금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왜일까.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떠나던 10년 전, 그 호기로움과 가끔은 실패해도 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정함이 더 이상 생겨나지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해선 안된다는 삶의 무게감이 나를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만 같다.
얼마전 서점에서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라는 책을 보고는 왠지 나를 위한 책인 것만 같아 바로 사버렸는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본질이 존재하네 마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만 많아 덮어 버렸다.
아직 분명 청년인데, 결혼 이후 드디어 누군가 '아저씨' 라 불러도 기분나빠 해선 안되는 그런 서른 중반의 후기청년(post-youth)의 시기에 현존하는 나는 이제 어떠한 방식과 형태로 삶을 살아내야 할 지 심히 고민이다.
음력으로는 새 해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걱정해 보도록 해야겠다. 엉망진창이었던 작년 한 해 동안, 그래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1)결혼한 것과 2)아내와 함께 요가와 사주명리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 새로움이라기 보다는 '낯섦'에 가까운 정서를 경험하며 어느 순간 다시 '새로운' 인연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올해는 어렵게 새로움을 찾기 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낯섦'을 회피하지 않도록 노력 해야겠다. 낯섦을 넘어 익숙한 무언가로 손에 잡힐 때 까지는 말이다.
(역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2010년 가을, 부푼 꿈을 안고 오랜 동경의 도시 서울로 떠나오던 날을 기억한다. 다가오는 겨울을 위한 외투와 옷 몇 가지, 그리고 좋아하는 책 두세 권을 가방에 꾸깃꾸깃 넣었다. 서울에 오면 제일 먼저 홍대를 가보려 했지만, 일단은 미리 연락해둔 고시원으로 가야 했다.
일하기로 한 회사 인근에 보증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월 25만원짜리 방을 구했다. 고향을 떠나오면서 독립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빈손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 섞인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각역 인근의 번쩍번쩍한 유흥가 뒷골목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고시텔은 2층의 술집과 5층의 노래방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다닥다닥 정렬된 방문 사이 좁은 통로를 지날 때 들린 어느 직장인의 트로트가 구슬펐기 때문이다.
방문이 열리던 순간의 경악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1평이나 될까? 사람 한 명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방 안에 침대며 책상이며 심지어 TV까지 들어가 있는 고시텔 방 안을 꽤 오랫동안 서성였던 것 같다."
GQ 2018년 2월호에 실린 글에서 발췌
원문 >> http://bit.ly/2SYviI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