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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피터 Sep 10. 2019

그렇게 회사원이 되어간다

생활 에세이 - 2017년 4월 4일

오래전 기록


며칠 전 결혼식을 다녀왔다. 화려해 보이는 예식, 화려한 음식, 화려한 사람들을 마치 TV를 보듯이 온전한 타인으로서 바라보고 있자니 내 모습이 문득 초라하다 생각되었다. 자유를 얻었으나 매일 경제적인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던 4년간의 생활이 작년 여름 끝이 났다. 친구들과 함께 쌓아 올린 위태해 보였으나 다양한 사람들과 꿈, 즐거움이 있었던 집과 가게가 재건축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 되면서 무너지게 된 것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포크밴드 ‘피터아저씨’가 결성되기도 전인 2013년 봄, 고향인 대전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 세 명이 재건축이 예정되어 있던 마포구 아현동에 모였다. 각자 좁은 고시원, 원룸, 친척집 남는 방에서 오랫동안 지내오다가 꾸깃꾸깃한 쌈짓돈을 모아서 비교적 저렴하게 방 세 칸짜리 쓰리룸 집을 얻었다.  


500/50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기에는 좁은 공간대비 너무 높은 임대료를 내야만 한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각자가 묵혀두고 있는 보증금을 모아보면 훨씬 넓은 집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아현동쓰리룸’ 이라는 청년들이 함께 살아가는 집은 시작되었다. 그전까지는 매일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좁은 방 안에서 라면이나 3분카레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먹었었다면, 아현동에 함께 살기 시작하고부터는 뭐가 즐거웠는지 늦은 시간에 다같이 모여 된장찌게며 김치찌개며 볶음밥 같은 ‘집밥’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함께 밥을 먹은 후에는 늦은 시간까지 악기를 연주하며 각자가 만든 노래를 들어보고, 또 함께 불러 보았다. ‘피터아저씨’라는 밴드 ‘생활’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후로, 우리는 거실 공간을 활용해서 목요일 저녁마다 ‘식당’을 열고, ‘콘서트’를 열었다. 낯선 사람들이 누군가의 집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공연을 본다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2013년 겨울부터 그 다음 해 여름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 친구로서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도 대다수이다. 2014년 10월에는 친구들과 함께 아현동쓰리룸 바로 옆 건물 1층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공간을 활용해 ‘언뜻가게’를 오픈했다. 언뜻가게는 아현동 주민들이 동네 거실처럼 자유롭게 오고 가는 공공성과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판매하는 상업성이 묘하게 섞여 있는 공간이다. 


아현동쓰리룸과 언뜻가게를 통해서 우리는 늘 상상 속에만 있었던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 하나 실험해 볼 수 있었고, 이곳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웠을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러나 2016년 8월, 우리는 곧 재건축이 시작되니 더 이상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건물주의 통보와 함께 정든 아현동을 떠나야 했다. 수많은 추억이 켜켜이 쌓인 이곳을 뒤로 하고 아현동에 모였던 친구들은 각자의 살길을 찾아 다시 곳곳으로 흩어져야 했다.  


성균관 대학교 인근인 명륜동으로 이사온 나는 그 이후로 반년 정도는 그 동안 관계 맺은 인연들 덕분에 사진촬영, 포스터 디자인, 이사 도우미, 강원도 취재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원적인 불안감과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와 같은 매일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은 또 다시 나를 압박 했다.


결국 올해 2월,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나에게 회사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패배감과 자괴감을 동반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취업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앞으로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일단은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간 이곳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지난 일요일 오후, 결혼식이 끝나고 초라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며 왠지 점점 우울해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안정감을 찾아보겠다고 회사를 선택했으나, 그래서 예전보다는 조금 더 수입이 늘었지만, 교통비와 식사비와 같은 새로 생긴 고정지출 비용을 제외하니 결국 예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자꾸만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자신의 혼란을 그저 내부에서만 소화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뭐가 자랑이라고 옆에 있는 애인에게 우울우울한 생각들을 필터링 없이 전부 쏟아내 버렸다. 이기적이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에게 고작 두 달 일하고 힘들다 투정을 부렸으니 말이다.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일요일 개그콘서트가 끝나면 많은 직장인이 우울감에 빠져 버린다고 했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꼴에 회사원이라고 우울한 일요일을 보내고 있는 나를 보며,


‘그렇게 회사원이 되어 간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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