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아내와 함께 동네 사주타로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결혼을 위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면서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자주 다투던 시기였는데, 그날도 대판 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길에 마침 그곳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우리의 다툼은 주로 변변한 직장 없이 음악활동과 기획활동을 전전하던 나의 거취에 대한 논쟁 때문이었다. 기업의 조직문화를 힘겨워하던 나로서는 더 이상 취업과 퇴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재건축 추진으로 쫓겨나긴 했지만 운영해오던 가게를 어딘가에서 다시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면 아내는 나의 생각에 동의는 하지만, 일단 부모님의 결혼 허락을 받아야 하고 결혼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소요되는 거대한 비용 마련을 위해서라도 취업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사실 탈기독교를 선언한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영향으로 사주나 점은 살면서 한 번도 보러 간 적이 없었다. 난생처음 사주타로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왠지 모를 긴장감과 죄책감(?)으로 한참을 망설였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분의 역술가 선생님께서 각각 별도의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왠지 조금은 친숙해 보이는 선생님 앞으로 다가가 머쓱한 인사를 건네고 아내와 함께 앉았다.
어떤 고민으로 오셨어요?
내 인생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했고, 음악가라는 정체성도 만족스러웠고, 월세와 공과금은 가끔 밀리기는 했어도 종합적으로 보면 잘 납부했다. 평소 밥도 잘 먹고 외식도 종종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대한민국 보통의 30대 남성들의 수입과 지출의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소소해 보일 수는 있었겠다. 내 삶의 규모와 가치가 결혼을 위한 일종의 암묵적 통과 시험 앞에서 이미 정해진 몇 가지 문항들 중 오답의 범주에 조차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문제였을까?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타고난 ‘팔자’지만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태진아의 오래전 유행가처럼, 사랑만으로도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그런 다정함(?)이 우리 사회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아무튼 요즘의 상황과 고민을 설명드리고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물어보셔서 알려드렸다. 무슨 말을 해주실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곰곰이 무언가를 적으며 생각하고 계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역술가님께서 드디어 입을 떼시며 해주신 말은...
"독특한 성향이네. 예술적 성향도 있고. 그런데, 재물운이 40대 중반은 되어야 들어오니 사업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
".........."
나는 그저 부정하고 싶었다. 아내와 나의 팽팽한 논쟁이 이제 역술가님의 답변으로 인해 점점 한쪽으로 기울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속으로, '나는 누가 봐도 조금은 독특해 보이고 예술적 성향이 있는 것처럼 보여!' 라고 되뇌었다. 사주타로집을 나오며 아내에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할까? 인정할 수 없어. 내가 직접 공부해서 볼거야!"
사실 큰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고, 그분의 말을 100% 신뢰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40대 중반 이전에는 그냥 회사를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역술가님의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고요했던 마음속을 미세하게 해집고 다니는 메아리처럼.
그 날 이후 나는 사주명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역술가님이 왜 그런 말을 해주셨는지 이해가 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출생 시점에 따라 주어지는 사주팔자(명命)와 우주/자연의 정체되지 않고 순환하는 기운(운運)과의 상호작용을 함께 이해해야 비로소 한 인간의 운명(運命)을, 그 흐름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운명이란 가만히 멈춰서 있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적 개념이라는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요즘 들어 생각이 많다. 진로 고민은 끝도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 너무 막연하다는 느낌, 때때로 무기력한 기분이 든다. 사주를 공부한 이후로 '초장 끗발 개끗발'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초년운이 좋으면 중년 혹은 말년의 운은 그만큼 우호적이지 않을 확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스스로의 삶을 보며 개인의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어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운의 흐름 조차 압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다. 바로,
"아직 우리의 피크타임(peak time)은 오지 않았어!"
우리 생활속에 녹아있는 사주이야기
‘팔자’라는 말은 우리네 생활속에 녹아있는 대표적인 사주명리학 용어다. 태어난 연/월/일/시를 기준으로 네 개의 주(사주)로 구분하고, 각각의 연주/월주/일주/시주마다 위(천간) 아래로(지지) 음양오행의 속성을 품은 두 개의 글자, 총 여덟 글자(팔자)가 주어진다.
1985년 2월 17일 묘시(오전 5시~7시)에 태어난 나의 경우 사주명리학의 언어로는 을축(乙丑)년, 무인(戊寅)월, 정해(丁亥)일, 그리고 계묘(癸卯)시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時 日 月 年
계 정 무 을
묘 해 인 축
위와 같은 여덟 글자가 바로 나의 팔자인 것이다. 내 팔자에는 재물과 사회적 관계를 상징하는 오행의 기운(나에게는 金기운)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데, 10년 단위로 변하는 대운(大運)의 흐름으로 보면 40대 중반에 金기운이 들어온다. 그러나, 대운 뿐만 아니라 작년은 무술년이었고 올해는 기해년이듯이 매년 변화하는 자연의 기운인 세운(歲運), 매달 변화하는 월운, 그리고 매일 변화하는 '일진이 사납다' 할 때의 그 일운이 있다. 또한 해가뜨고 지는 하루 24시간 동안 변화하는 자연의 기운에도 金기운은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사업을 40대 중반에 해야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꼭 맞지는 않다. 사주팔자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운명의 주체인 한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라는 관점이 바로 사주명리학의 운명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