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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피터 Sep 21. 2020

사주도 철학인가요?

동양사상과 사주명리의 핵심, 음양陰陽

철학(哲學, philosophy)은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한자 문화권식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우주만물의 도(道)와 이치(理致)를 탐구하는 것이다. 도(道)를 알고 있냐며 번화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말하는 도가 그 도(道)이긴 하지만, 그들을 따라나서면 결국 제사를 위한 돈을 요구받게 되므로, 도(道)를 사칭해 돈을 벌려는 종교 장사꾼들의 도는 철학적이지 못하다.


사주팔자(四柱八字) 혹은 명리학(命理學)은 어떤가? 이 또한 도(道)를 사칭해 돈을 벌려는 장사치일까? 물론, 그런 부류도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남의 운명(運命)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너무 쉽게 때로는 꺼림칙하게 이야기하며 값비싼 상담료를 요구하기도 하니 말이다.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명리학은 과거시험을 통해 일종의 국가공무원을 선발했던 공적인 학문 분야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실용학문 분야인 잡과에 음양과(陰陽科)가 속해 있었고, 음양과에는 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등 의 전공이 있었다. 음양(陰陽) 이라는 철학적 틀 안에서 천문학은 하늘의 이치를, 지리(풍수)는 땅의 이치를, 그리고 명리는 하늘과 땅의 기질(氣質)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에 대한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었다.


음양(陰陽)이란 무엇인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모든 사유는 음양(陰陽)이라는 세계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민족에게 음양사상은 선사 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이다.    


일음일양지위도 一陰一陽之謂道


우주의 만물은 음(陰)과 양(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로, 공자의 저술로 알려진 계사전(繫辭傳)의 한 구절이다. 계사전은 유학의 사서삼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을 풀이한 책으로,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주만물의 심오한 변화와 그 원리를 64개의 상징(괘)을 통해 보여준다. 위편삼절(韋編三絶). 공자는 역경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독서했다고 한다.


음(陰)과 양(陽) 두 글자는 1)각각 구름에 태양이 가려 그늘진 현상과, 이와 반대로 2)태양이 온 땅을 밝게 비추고 있는 현상을 뜻 한다. 음과 양은 어둠과 밝음, 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 땅과 하늘, 남성과 여성, 천국과 지옥처럼 자칫 대립하며 분리되어 있는 개념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동양사상에서의 음양(陰陽)은 이러한 상반된 두 에너지가 상호의존적인 관계 안에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땅 없이 하늘이 있을 수 없고, 2)하늘 없이는 땅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동양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음양의 끊임없는 역동적 관계성이 우주의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리(原理)라 인식하며 사유한다.


사주명리(四柱命理) 역시 생로병사, 길흉화복 등 인간의 총체적인 삶을 음양(陰陽)의 철학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정자(양)와 난자(음)의 수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인간은 양으로 상징되는 하늘의 기운(氣)과 음으로 상징되는 땅의 형질(質)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밀어내며 확산하는 양의 기운은 마음 형성에 영향을 주고, 또한 끌어당기며 수렴하는 음의 기운은 몸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 인간의 마음과 몸 역시 음양(陰陽)의 기질(氣質)을 닮았다.


태극기에도 활용된 음양 심볼과 역경 8개의 심볼(상괘).



음양(陰陽)의 동등성과 일원성


고대로부터 서양의 철학자들 또한 인간의 마음과 몸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해왔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마음과 몸을 동등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플라톤은 몸으로 대표는 물질세계에 대해 순수 세계인 이데아가 불완전하게 복제된 것으로 간주한다. 서양의 주류 철학자들은 마음은 영원하고 순수한 것이니 이데아나 천국과 같이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반대로 몸은 임시적이고 소멸되는 것이니 극복하여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들에게 몸과 마음은 상호 배타적이며 서로 철저히 다른 실체이고, 각각 나름의 독립적인 영역에 존재하며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이원적 존재이다.


이원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대립과 갈등, 파괴는 불가피하다. 숲의 나무들과 동식물들, 땅속 깊이 묻혀있는 석유와 가스 등 이 땅의 모든 자연은 인간 문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착취의 대상이 되기 쉽다. 믿음과 생각이 나와 다른 존재 및 국가는 적화(赤化)하여 무찌르면 그만이고, 오래되어 낡은 주거지역은 재개발하여 멋진 아파트를 지으면 그만이다. 같은 땅을 터전 삼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은 그 과정에서 철저히 타자화되고, 사라져 간다.


천지여아병생 天地與我竝生 이만물여아위일 而萬物與我爲一


도가 사상가인 장자는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어 생겨났고, 만물도 나와 더불어 하나를 이루고 있다'라고 말했다. 동양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만물에 대하여 음양(陰陽)과 같이 상호의존적인 관계 안에 공존하고 있는 일원적 실체로 인식한다. 일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도 물론 대립이나 갈등이 존재한다. 서로 다르기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동양철학에서의 부딪힘(충沖)은 파괴의 목적이 아닌, 또 다른 창조와 시작을 위한 화합(和合)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음양(陰陽)의 연결성 및 관계성을 통해 우리의 존재 인식을 확장할 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또한 생태주의적 관점이기도 하다. 심각한 지구온난화와 전 세계인의 일상을 바꿔버린 코로나19는 그동안 지구 자연을 대상화하며 착취하고 훼손해온 우리 모두가 함께 야기한 문제일 수 있다. 내가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세계의 변화 또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하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랑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땅의 수많은 존재들을 상호의존적인 관계 안에서 다시 새롭게 바라보려는 선한 의지(意志) 정도는 품어야 하겠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 안에 공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주만물의 근본 원리로써 동양사상 및 사주명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도(道), 곧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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