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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Nov 29. 2023

산자를 위한 제사상

"제사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사상 앞에 이부자리를 편 부부의 이야기다.


부부는 해도 지지 않은 초저녁에 상을 차리고 제사상을 받으실 시어머니의 묘까지 산보를 다녀온다.


돌아온 후에는 상앞에 자리를 깔고 잠깐 누웠다가 다시 어머니 묘에 간다.


그렇게 날이 저물기도 전에 제사가 끝난다.


어느 해에 제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유식한 학자가 그 집 앞을 우연히 지나다 부부를 보고 무슨 짓이냐고 묻는다. 남편은 대답한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신 소원이, 내가 금슬 좋은 부부 사이를 이루는 것이었으니 아내와 사이좋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마땅하고, 어머니는 눈이 어두워 밤길을 다니지 못하니 모시러 갔다 다시 모셔다드리는 게 이치지요.


학자는 그들의 제사야말로 가장 훌륭한 제사임을 인정하고 만다. 제사란 그런 것이다. 결국은 마음이 으뜸이고 형식은 거들 뿐."


- 문학동네코믹스, 박서련 소설 x 정영롱 만화 <제사를 부탁해> 中



'얕에 아는 이는 내 지식만이 절대진리라 주장하지만, 깊게 탐구한 자는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줄 아는구나'


큭큭, 거리며 재미있게 책을 보다 묵직하게 메세지가 다가온다.   


그러고보니 아버님의 두번째 제사가 다가온다.


제사날이 다가오면 산자들이 평소 소신과 달리 우왕좌왕한다.  


"다 필요없다. 죽은 사람이 뭘 알아!"


시어머니는 정작 당신 남편이 저 세상으로 먼저 가자 말이 싹, 아니 마음이 싹 바뀌셨다.


"냅둬, 난 그냥 내가 놓고 싶은 거 몇 개만 놓을란다. 나 혼자 해도 돼." 


첫 제사에서 정말 메모리얼 차원에서 한 두개만 하시는 줄 알고, 옆에서 가볍게 거들었다. 문득 본 상다리가 결국 휘어질 지경이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죽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년만 지내다오, 부탁하신다.


제사상을 차리다보니 당신 남편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상기되고, 그럼 나도 금방 잊혀지는건 조금 서운한데, 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자식이 나를 잊는건 어쩐지 서운한 일인건 당연하다.  


교회 집사님인 큰시누도 분명 '그런 거 다 필요없다'고 했다. 그녀도 말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야기한다.


같은 사무실 사람이 오래 알던 천애고아 같은 청년이 있었는데, 어느날 몹쓸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고아처럼 지내던 청년의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보험금 소식을 알고 득달처럼 달려왔다고 한다.


빌런들의 루틴은 어쩜 그렇게 뻔하고 식상할까.


그렇게 모두의 혀를 차게 하는 동안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잊고 지낸 청년이 꿈에 나왔다고 한다. 핏줄 한방울 섞이지 않은 그 사무실 사람의 꿈에.


"누나, 나 배가 너무 고파. 누나, 누나가 나 밥 좀 차려주면 안돼?"


가까운 지인의 경험담이 아버지의 첫 제사를 앞두고 번뜩 떠올랐단다.


죽은 자의 영혼??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아무도.


근데 없음 마는거라 문제될게 없지만 혹시 있다면 우리 아버지 오셨다가 서운하시면 어쩌냐고, 우리 아버지 배고픈거 그거 하나 못 참으시는데, 툴툴 거리며 열심히 전을 부친다.


'다 귀찮다'는 작은 시누는 새벽에 혼자 일어나 잡채를 만들고, 찐빵을 찐다. 그냥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거야, 란다.


시집 안 간, 회사만 다니느라 요리를 해본 적이 없는 작은딸이 해드린 유일한 음식, 그래서 너무나 맛있게 드셨던 걸 나도 봤다.


"왜들 그렇게 말이 바뀌는건데?"


우리집 손석구는 모친에게, 누이에게 "안 한다며, 몇 개만 간소하게 한다며" 샐쭉거리다가 그래도 내 아버지의 밥상이 싫진 않은지 연차 반차까지 내고 1박 2일을 감행한다.


이번 제사는 마침 금요일이니, 대충 정리하고 어머니 모시고 여행 좀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이런 거 다 부질없다.


아버님은 정말로 나를 가장 좋아하셨다.


"딸보다 얘가 낫다"며 "니가 최고다"고 말하고, 밥시간이 조금 늦어도 호통치지 않고 "괜찮다"고 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용돈도 나만 받았다. 와이프와 딸이 볼까봐, 자는 척 하다 몰래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셨다.


그래, 솔직히 다 부질없다. 아버님은 날 가장 좋아하셨지. 아버님 전은 내가 부쳐드려야지.


'아버님 역시 저밖에 없죠?'


산사람을 위한 죽은자의 제사가 올해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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