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리릭~ 팽그르르~ 팽그르르~~
화장실에서 리듬체조를 보는 줄 알았다.
카페 화장실에서 앞의 여자가 리듬체조 선수처럼 손목의 스냅마저 우아하게 팽그르르~ 휴지를 풀어서 손으로 실타래를 감듯 휴지를 둘둘둘 돌돌돌 돌돌 돌돌돌 만다. 바라보는 내 정신도 휘리릭 풀어졌다.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설마, 저 정도면 작은 일이 아니라 큰 걸 뒤처리하려는 거겠지? 도대체 그녀는 얼마나 배출하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었기에 휴지를 저렇게 마는가? 어마어마한 쾌변이라고 해도 최종적이 잔여물만 휴지로 처리하면 되니 배설의 양과 휴지의 양은 비례하지 않을 텐데. 손에 묻지도 않을 자기 배설물이 저렇게까지 더러울까?
중요한 건 휴지를 말아 쥐는 건 습관이라는 점. 꼭 큰 것과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휴지를 최대한 많이 푸는 사람들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비데가 늘면서 자신의 배설물을 직접 닦는 걸 꺼리는 이들이 많이 늘은 듯한데. 왜 나는 휴지회사 주식을 사지 않았나 의문스럽기도 하다.
저 하얀 휴지 뭉치를 만들기 위해 30년 된 나무가 베어지고, 수만 리터의 물이 사용되며, 강을 오염시키는 화학약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모르겠지. 모를 거라 믿고 싶다.
우리는 그저 부드러운 감촉과 놀라운 흡수력에만 집중할 뿐, 이면에 숨겨진 척박한 진실은 외면하며 산다.
한 명이 한 칸의 휴지만 덜 써도, 전 지구적으로는 정말 많은 나무를 살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휴지를 거는 방향도 중요하다. 알고 있는가? 휴지가 쉽게 풀리는 방향이 있다. 가정처럼 덮개가 있는 형태라면 숫자 9가 등을 돌리듯 꽂혀 있다. 바깥쪽으로 걸어두는게 좋다고 한다.
이미 오래 전, 2010년 환경부 넛지 공모전에서도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된 방법이다. 휴지 끝이 벽 안쪽을 향하면 얼마나 푸는지 보이지 않아 사용량이 늘지만, 바깥쪽으로 걸면(숫자 9가 등을 돌린 모양처럼) 툭툭 끊겨 쓸 만큼만 천천히 풀게 된다. 사소한 불편함으로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는 일종의 '넛지(Nudge)'다.
휴지도 아끼고, 나무도 아끼고, 가계도 아끼고, 지구도 아끼려면 휴지를 걸때 방향을 한번 점검해보길 권하고 싶다. 휴지 덮개를 조금 더 무겁게 만들어 탁탁탁, 인위적인 브레이크를 거는 것도 좋겠다.
두루마리든, 곽티슈든 손목의 스냅으로 반동을 주듯 팽그르르, 폭폭 연속적으로 뽑아쓰는 사람은 칸수와 장수를 세지 않는다. 그건 그저 습관이다.
그럼 덮개든 벽이든 휴지가 풀리는데 제어를 줄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툭 끊기기 십상이라 천천히 풀어쓰게 된다. 빠르게 풀리는 휴지라면 풀리는 만큼 쓰겠지만 상황이 긴박하다면 천천히 풀리는 휴지는 꼭 필요한 만큼만 서둘러 끊어 들어가겠지. 또 자꾸 툭툭 끊기면 귀찮아서라도 좀 덜 쓰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 반드시 세상이 편리한 방향으로 진화할 필요는 없다. 생태계를 위한 일보전진을 위해 우리의 생활은 일보후퇴해도 좋겠다 싶다. 귀찮은 우리 안의 게으름을 잘 일깨울 수 있는 조금 불편한 방향으로 세상이 나아갔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비데를 쓴다고? 말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웅성웅성 들린다. 미안하지만 비데도 대안은 아니다.
이번엔 물이 마음에 걸린다. 1회 사용에 평균 1리터 가까운 물이 쓰인다고 한다. 나무를 살리자고 귀한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환경적 조삼모사'일지도 모른다.
비데는 또한 물만 쓰는게 아니라 전기도 쓴다.
그저 내 소중한 엉덩이의 1분이 안 되는 안락함을 위해 물을 데우고 건조 바람이 나오고, 변좌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24시간 전기가 돌아간다. 우리의 엉덩이를 위해 발전소는 탄소를 내뿜으며 전기를 생산한다.
내 엉덩이가 차가운 걸 싫어하기 때문에 지구는 매년 더워지며 아기 펭귄이, 북극곰이, 고래가 수많은 동물이 죽고 있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갑자기 모든 것을 바꿀 자신은 없다. 완벽한 환경보호는 실천도 전에 반감을 부른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이런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 보면, 몇몇은 휴지를 뜯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한 칸이라도 덜 쓰지 않을까. 그리고 그중 똘똘한 누군가는 지구에 더 친화적인 무언가를 발명해낼지도 모른다.
미래의 신소재까지 닿는 일은 아직 멀다. 그래서 완벽한 정답을 기다리기 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의 변화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길 바란다. 휴지를 한 칸 덜 쓰고, 장바구니에 담을 물건을 한 번 더 고민하는 '꽤 괜찮은 소비'를 기대하고 싶다.
10년 전 우리가 물과 공기를 사서 쓸 줄 몰랐듯, 오늘의 작은 변화가 10년 뒤 어떤 세상을 만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일부 생태계가 다시 돌아왔듯 지속가능한 모두의 작은 변화로 10년 전에 봤던 자연을, 10년 뒤에 다시 보고 싶을 뿐이다.
화장실 휴지에서 시작된 작은 고민이 당신의 욕실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그 공감이 모여 단 한 칸의 휴지라도 아낄 수 있다면, 그 마음들이 모여 결국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금 불편하게, 그래서 조금 덜 쓰는 우리의 현명한 게으름이 결국 우리 모두를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