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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Sep 14. 2022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던 날, 사고가 났다.

본격적인 걷기의 시작, 그 이유

2020년 운동을 시작했다. 점핑, 트램펄린 운동인데 너무 신났다. 운동을 하다 보니 잡생각이 없어져 머리가 단순해지는 게  참 좋았다.


어느 날, 센터를 나와서 조금 더 운동을 하고 싶어 두리번거리던 내게 공유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무작정 자전거를 빌려 탔다. 익숙하지 않은 자전거를 온몸으로 끌고 다니다시피 하다 보니 쇠로 된 페달에 정강이가 찍히는 일이 많아 한동안은 상처투성이였다. 자전거를 타다 보니 스피드광의 심리를 알 것 같았다.


그 바람, 그 시원함,
훨훨 나는 것 같은 붕 뜬 기분.
뭐든 잘 될 것 같은
긍정이 내 안에 마구 솟아났다.


아래로 쭉 뻗은 혹은 울퉁불퉁 정비되지 않은 내리막길. 길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바람을 느끼기 위해 한여름에도 멈추지 않고 매일매일 땀을 뻘뻘 흘리며 쇳덩이를 끌고 다녔다. 비가 와도 우비를 입고 탔다. 그러다 자전거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반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자전거를 탔다.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던 어느 날, 그 날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고 나면
머리가 가볍고 단순해졌는데,

그날은 그렇지가 않았다.
출렁출렁. 내 안의 파도가.
마음이 계속 일렁였다.


늘 오가던 길, 잘 타고 집에 거의 다 와서 자전거가 주유소 세차장 배수로에 앞바퀴가 끼었다.


내리막길 속도가 붙어 달리던 바퀴는 별안간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고, 내 몸은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붕~ 허공에 띄워져 나동그라졌다. 너무 아팠지만, 번쩍 일어났다.


자전거를 다시 탈 순 없었다. 처음엔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저 통증. 그런데 점점 더 통증은 심해졌고 오른쪽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다. 파스를 붙이고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밤새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다리를 절며 버스를 탔다. 정형외과를 가기 위해서였다.


상황을 보나, 환자의 상태로 보나 탈이 난 것은 분명한데 X-RAY상으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해서 MRI를 권하고 싶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으니 일단 약물과 물리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도 아프다면 그건 연골 손상을 의심해볼 수 있고, MRI로만 판독이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MRI 찍는 것은 미뤄뒀다.




이상한 마음이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대신해 몸이 때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오히려 좋았다. 마음이 가벼웠다. 가슴 한켠 서글픔도 자리했다. 마음을 대신해 몸이 아팠다고 마냥 개운해진 내가 안쓰러웠다.


괜찮아. 내가 널 달래줄게. 내가 널 잘 안아줄게. 우리 둘이 잘해보자.
아무려면 어때, 걸을 수 있는데. 걸으면 돼.
난 걸을 수 있으면 돼. 난, 아무렇지 않았다.


그 후 몇 달 뒤에도 계속된 통증에 마지못해 MRI를 찍었다. 반월판연골파열. 예상대로 정말 찢어졌었다. 연골은 저절로 붙지 않는다고 했다. 수술인지, 시술인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안 하고 싶어서. 의사는 말했다.


"점점 더 통증이 심해질 겁니다. 더 찢어지게 되면 연골 전체를 도려낼 수도 있고, 발목과 고관절에도 무리가 될 겁니다. 아프지 않은 반대편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많이 쓸 거고, 그럼 반대편도 상하게 되겠죠. 날짜 잡고 가시길 권합니다."


"네. 생각해볼게요."


그저 실없이 웃으며 대답을 하고 나왔다. 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어떤 날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날씨가 흐리거나 오래 서있으면 할머니들처럼 무릎이 아파 다리를 고 앉는다. 그러다 괜찮다가 통증이 다시 찾아오면 앞서 보다 조금 더 아프다. 나는 원래 아픔을 잘 참는다. 아픔에 조금 무디고, 둔감한 편이다. 다행이다. 마음은 예민해도, 아픔에는 둔감해서.


그렇게 지낸다. 그리고 나는 걷는다.
그냥 걷는다. 매일 걷는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걸으려고.

몸이 아픈 건 괜찮은데 마음이 흐려지는 건
견딜 수가 없다.

햇볕을 충분히 내려받으며, 근사한 기분으로  바람을 받아들이고, 음악소리를 키워
오래오래 걷는 일이 나를 살린다.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던 2020년 겨울, 나는 몸으로 마음의 고통을 때웠고 2022년 가을, 현재 매일 근사하게 걷는다. 걸을 수 있다면 무엇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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