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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Sep 15. 2022

작은 용기가 필요해

세상 모든 생명은 귀하고 소중하기에

세상의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생명을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

22.08.07 방영 <동물농장> 수의사 김명수


길을 걷다보면 작은 생명의 죽음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그다지 시골도 아닌데, 어떤 이유로 저런 모습으로 있게 됐을까.

 

어렸을 때는 작은 죽음이 무서웠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면 "으악"하는 큰 소리를, 다행히 멀리서 형체를 발견하게 되면 최대한 보지 않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2003년 남자친구가 있었다. 동물과 아기를 좋아하는 남자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고, 믿고 만나라던데 첫눈에 반한 내 남자친구는 둘다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피하는 편이니, 싫어한다고 보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있는데 쌩쌩 달리는 도로와 인도의 경계에서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앙칼지게 울고 있었다. 왜 거기에서 그런 모습으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쌩쌩 달리는 차에 이따금 발악을 하듯 몸부림을 쳤고, 그때마다 아슬아슬한 그 모습에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어떻게." 라고 안타까워할 뿐.


발악하며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그리고 쌩쌩 달리는 밤의 도로.

어쩔줄 몰라 지켜보는 사람들.


남자친구가 다가갔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말없이 걸어갔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고양이에게 다가가 작은 몸을 들어올렸고, 정류장 뒤 화단으로 옮겨줬다.


"동물, 싫어하잖아?

"생명이잖아. 아무리 곧 죽을 생명이라도 도로 위에서 차에 깔려 개죽음을 맞는거랑, 명이 다해 자연에서 숨을 거두는거랑 다른거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는 비록 동물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는 사람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역시, 사람은 참 잘본다. 뿌듯하고 행복하네.

 



어제는 길 위에서 죽은 어린 까치를 봤다.


요즘은 못볼걸 봤다는 두려움에 고개를 돌리지는 않는다. 안쓰러운 마음에 명복을 빌어준다. 부끄럽지만 아직 손으로 잡고, 땅에 고이 묻어줄 정도는 못된다. 아파트 소음방지벽 아래 있는 것으로 보아 날다가 벽에 부딪혀 죽은 거 같다.


죽음은 언제나 아프고, 애틋하지만 어린 것의 죽음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어쩌다 엄마랑 떨어졌니, 미안하구나. 아팠겠다. 이렇게 어린데.. 잘가, 잘가, 잘가고 좋은 세상에서 편안했음 좋겠다. 미안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그 자리를 지나는데 누군가 흙 위로 옮겨놓았다. 지나가는 사람을 위해서인지, 어린 까치의 조금 더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세상에는 나보다 좋은 인간, 나은 인간이 많다.


그래서 고맙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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