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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Sep 20. 2022

잘가라, 마음아

신의 배려 '망각' 어디 쉬운 가요?

어른들이 그랬다. 한숨을 쉬지 말라고.

한숨을 자주 쉬면, 한숨 많은 생을 살게 된다고.


그런데 가끔은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쉴 때가 있다. 또 어떤 때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일부러 그 마음을 뱉어내듯 훅, 내쉴 때가 있다.


그럴 때의 한숨은 차라리 테라피 성격의 심호흡에 가깝다. 나쁜 감정, 그 기분을 툭, 몰아 크게 뱉어내고 그리고 새 숨을 훅훅, 다시 불어넣으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고 새로워진다.


내 안의 큰 숨을 밖으로 내보낼 때면

내 속에 머물기에 적당하지 않았던 마음이

공기 속에 흩어져 흘러가는 것을 종종 느낀다.


걷기는 답답한 마음을, 속상한 마음을, 울분을, 그 어떤 마음을 흘려보내기에 좋다. 나에게 혼자 걷는 시간은 너무 소중하다. 혼자의 감정을 흘려보내고 감당하기에 한없이 적절한 시간이다.




드라마 <훈남정음>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애벌레였다는 걸 기억하면,
나비가 되어서도 절대 날지 않는대요. 무서워서.

신은 나비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줬고, 결국 훨훨 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잊어야 돼요."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망각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망각의 차입니다.
 이승의 기억을 잊게 해 줍니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망각의 차를 내어주지 않는다. 


"눈으로 지은 죄, 입으로, 손발로 지은 죄가 얼마나 힘이 쎈 지" 모두 기억하라고, 그보다 더한 형벌은 없다고. 진정한 형이다. 그 대사를 들으면 망각이란 '신의 배려'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오늘을 위해, 내일을 위해 잊을 것은 잊어야 한다.


망각의 기능을 제대로 써야 하는데, 문제는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정말 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상, '잊는다',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흘려보내야 할 뿐.


나는 그래서 걷는다. 마음을 잘 흘려보내고 싶어서.


길을 걸으며 그날그날 감정에 따라 한숨을 크게 내쉬기도 하고, 가끔 정말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내키는 노래를 뮤지컬 배우가 된 양 원 없이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볕이 잘 들지만, 사람은 잘 다니지 않는 길을 자주 걷는다)


그러다 보면 나를 괴롭혔던 마음의 응어리가 슬며시 풀리고, 풀어진 마음은 흐르는 구름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훌훌 흘러내려 날, 떠난다.


거칠게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토닥토닥.. 어느새 자장자장 잔잔해지는 것을 느낀다. 마침내 평온하다.


생각도, 마음도, 감정도
적당히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잘 흘려보내기 위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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