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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13. 2022

"이 긴박한 생명을 살려주소서"

괜찮다는 당신의 위로, 고맙다는 나의 인사

나에게는 초능력이 있다. 남들도 유심히 살펴보면 있는 능력이니, 특별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바로 차 뒤꽁무니와 대화하는 능력. 차들은 신기하게 뒤꽁무니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절박하게 말한다.  

 

"안녕, 나 좀 들어갈게"라는 가벼운 대화부터

"야야, 비켜봐, 비켜봐!"라는 성급 혹은 긴박함

"저저.. 저...... 저.......... 들어가고 싶은데.. 아.... 아니에요.... 먼저 가세요. 전 이따 갈게요."라는 초보자의 안절부절

"먼저 가슈, 아님 말고.. 그럼 저 먼저 가유"의 느긋함 혹은 능글능글한 여유

"쌩-"이라는 경솔한 이기심


길을 걷는 나는 인도, 만나는 차들은 차도.


이렇게 입장이 다르다 보니,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차들을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유독 남일처럼 볼 수 없는 차량이 있다.


"삐뽀삐뽀, 에엥~~"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부터 들리는 긴박한 사일렌. 인도 위의 나도 마음이 급해져 도로 위의 애타는 사정을 보게 된다. 구급차량의 위치. 그리고 앞서 있는 차들의 동태.


"다들, 빨리빨리, 비켜줘야 되는데"


애가 타 죽겠다. 발만 동동이다.






나도 구급차를 타고, 달린 적이 있다. 15년 전 즈음, 명절을 앞두고 집에서 아빠가 털썩 주저앉으셨다.


"응? 아빠 왜 그래? 괜찮아?"

"응, 괜찮아. 어지럽네. 좀 누워야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 마음이 조마조마 불안했다. 아빠는 괜찮다고 말하며 방 안에 누으셨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고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분신술을 하듯 불안을 자꾸 새끼 쳤다.


"아빠, 이상해. 병원 가자. 내가 구급차 부를게"

"쓸데없는 소리. 가만 둬라. 동네 남사스럽게"


아파트 단지 안에 울려 퍼질 사이렌 소리가 당신 때문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우신 듯했다. 평소라면 성격이 워낙 강경한 분이라 뒷말이 나올까 그냥 뒀겠지만, 그땐 이상하게 나도 고집을 부리게 됐다. 몰래,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했다.


"119죠? 아빠가 이상해요. 방금 털썩 쓰러지듯 주저앉으셨는데, 계속 어지럽다고 하시고. 이상해요. 많이 편찮으신 거 같아요. 그런데 부탁이 있어요. 아빠가 사이렌 소리가 부담스러우신 거 같아요. 오실 때 단지 안에서는 소릴 꺼주실 수 있을까요? 네, 감사합니다."


구급차 사이렌의 역할을 알면서도 아빠를 차에 태우기 위해 '소리를 꺼달라' 이상한 부탁을 했다. 그리고 다시 아빠에게 갔다.


"아빠. 이상한 거 같아. 내가 전화했어. 구급차가 올 거야. 내가 사이렌 울리지 말고 와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병원 가자."


이윽고 정말 빨리 구급대원들이 집으로 왔고, 아빠는 들것에 실려가지 않겠다고 다시 고집을 부렸다. (아, 우리 아빠. 정말...) 구급대원들은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상하게 그 말을 들으며 동시에 상황을 신속하게 판단해 나갔다. 들것은 타지 않지만, 양쪽에서 부축을 해서 구급차로 이동하기로.


자꾸 죄송하다는 아빠에게, 구급대원은 말했다.

 

"괜찮아요. 아저씨. 아저씨처럼 편찮으신 분들 쓰시라고 있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대신 병원으로 이동하는 구간 사이렌을 울리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모셔다 드릴게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응급상황. 설마설마 했지만 그제야 실감이 났다. 처음 타는 구급차였지만, 누구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이렌 소리와 구급대원들의 요청에 따라 도로 위의 차들은 하나, 둘 길을 터주기 시작했고, 큰 변수와 지체되는 시간 없이 신속하게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다. 구급대원들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차 안에서도 차후 내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줬다. 본인들이 환자를 어떻게 내리고 어디로 옮길지, 그동안 내가 해야 할 응급실 수속. 응급상황에 대한 경험은 없었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 정말 덕분이다.  


MRI 촬영을 하고 보니, 아빠는 뇌출혈이었다. 집에서도, 도로 위에서도 큰 지체 없이 병원으로 이동했기에 아빠는 육안으로 보이는 큰 후유증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모두 구급대원들 덕분이다. 현실적인 실무 감각을 발휘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환자와 그 가족의 요구를 적절하게 수용하고 상황을 무리 없이 신속하게 물 흐르듯 이끌어줬다. 당시에는 내가 돈을 벌게 되면 그분들을 다시 한번 찾아뵈야지 했는데, 사람이 이렇게 상황적 자기 합리화에 강해 여태 인사를 못했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그 일을 겪고부터는 달리는 구급차의 외침이 더 애가 탄다. 저 안에는 어떤 환자의 긴박한 사연이 타고 있을까. 어찌할 바 모르는 그 가족은 얼마나 도로 위를 애타게 보고 있을까.


나는 길을 걷다가,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꼭 어디서 들리는지 그 구급차를 찾는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면 항상 기도한다.


"내가 믿는 신이시여,
제발 이 긴박한 생명을 구해주세요.
부디 살펴주세요.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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